경기일보로고
기획탐구> 지구촌 화약고, 분쟁지역 현황 ⑦아프가니스탄
정치

기획탐구> 지구촌 화약고, 분쟁지역 현황 ⑦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달러를 겨우 웃도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천연가스 외에 이렇다할 자원도 없다. 복잡한 종족 구성에 문맹률도 높아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보다는 혼란과 분쟁 가능성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

구미가 당기는 좋은 여건보다는 악조건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이 왜 옛 소련에 이어 미국까지 끼어들어 끝없는 소모전을 펼치는 전쟁의 땅으로 변했을까.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천m가 넘는 험준한 고원지대인 이 나라가 왜 종족분쟁과 이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해 오늘도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이에 따른 오랜 침탈의 역사를 들여다보기 전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북쪽으로는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이란,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에 면한 내륙국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는 이곳을 오래전부터 육로의 핵심통로로 발전시켰다.

실크로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동서문명의 교차로로 기능을 해왔던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그 결과 많은 민족이 이 지역에 혼재하게 되면서 분쟁의 불씨를 키워왔고, 또 침탈의 역사가 반복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정권이 세워져 전화로 피폐해진 국가 재건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무장저항이 계속되고 있고, 빈 라덴의 은신처로 지목되고 있는 등 이슬람 `반미성전'의 전초기지화하면서 곳곳에서 총성이 이어지고 있어 평화와 안정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 동서 교통로의 요충지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은 국경선 길이만 5천826km에 달하는 내륙국이다. 면적은 64만7천500여㎢로 한반도의 3배 가까이 된다.

2천993만명(2005년 기준) 인구는 다양한 종족분포를 보인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파슈툰족이 42%를 차지하고 있고 이어 타지크족 27%, 우즈베크족 9%, 하자라 9%, 기타 13% 순이다.

종교는 99%가 이슬람이고 그중 수니파가 84%로 다수다. 문맹률은 64%에 달한다.

이란과 중앙아시아, 인도를 잇는 실크로드의 핵심통로에 자리 잡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아프간은 수없이 주인이 바뀌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6세기부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대왕에 정복됐고, 이어 인도 쿠샨왕조와 사산왕조 등의 지배를 거쳐 결국 7세기에는 아랍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때부터 이슬람교가 이 지역에 확고히 자리잡게 됐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3세기에는 칭기즈칸의 몽골족에 정복됐고, 그 뒤에는 인도 무굴제국에 복속됐다가 18세기 들어서 이 지역을 아우르는 첫 민족국가를 형성하게 됐다.

이 지역에 열강의 입김이 미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다. 인도를 식민지로 거느린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차단하기 위한 완충지로 아프간을 주목,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프간의 강력한 저항으로 영국의 점령시도는 실패하고, 1차대전 이후 완전한 독립국가로 아프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옛 소련의 집요한 아프간 장악 기도 =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는 항상 주변강국들의 병탄 유혹을 낳았다. 2차 대전 이후 동서 냉전 시절 옛 소련의 아프간 전략이 그 대표적 사례다.

종교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이질적인 중앙아시아 지역 공화국들을 이리저리 엮어 경계선 내에 편입시킨 채 남쪽으로 추가적 완충지대를 확보하려 했던 소련의 입장에서 아프간은 전략적 요처 중의 하나였다.

아프간을 끌어들일 경우 파키스탄과 인도에 이르는 인도양 남진통로가 확보되는 데다 이란에서 아프간을 거쳐 중앙아시아 공화국으로 연결되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유입을 차단, 남쪽 국경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옛 소련이 아프간 내의 종족 및 이념 갈등을 활용해 끊임없이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간접적 지원을 제공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옛 소련이 2차대전 이후 계속해온 아프간 내정에 대한 간접적 개입정책에서 수위를 높여 1979년 아프간 침공이라는 군사적 결정을 내린 것도 현지 친소정권이 이슬람 반군의 저항으로 상황통제가 불가능한 국면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친소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할 경우 중앙아시아 국경지역의 완충지대가 무너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아프간을 영향력 아래 둘 필요가 있었다.

소련은 1979년 12월 중무장한 10여만 병력을 동원, 아프간을 전격 침공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채 친소정권에 대한 직접 지원에 나섰다.

이후 소련은 1989년 고르바초프의 결정에 따라 아프간에서 철군하기까지 이슬람 반군 `무자헤딘'과의 끝없는 소모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무자헤딘 반군은 험준한 산악지형을 배경으로 집요하게 소련에 대한 `성전(지하드)'을 전개해 지속적인 피해를 입혔다.

소련군과 친소정권은 일부 도시지역만을 확보했을 뿐 국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반군들에게 사실상 끌려다니는 상황이 놓이게 되고,소련내에서도 아프간 철군여론이 높아지면서 결국 빈손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 탈레반의 부침 = 탈레반은 `학생'혹은 `구도자'라는 의미다.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에 철저한 급진세력이다.

1994년 파키스탄 접경 칸다하르 주에서 태동한 탈레반은 소련군의 철수 이후 종족분쟁의 성격을 띠고 장기화 면으로 가던 아프간 내전의 흐름을 일순에 바꿔놓았다.

민생은 아랑곳 않고 이전투구식으로 내전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도덕성을 바탕으로 민심을 얻었고, 각 파벌 핵심세력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 수립을 선언한 것은 출범 후 불과 2년여 만인 1996년 9월이다.

수니파 이슬람원리주의의 확산을 경계한 이란 등의 지원을 받아 반 탈레반 반군의 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기반을 둔 정통이슬람 통치를 통한 국가건설에 나섰다.

그러나 여성의 집 밖 출입은 물론 교육도 극도로 제한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원리주의 억압체제는 오랜 내전에 지칠 대로 지친 아프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일종의 `개혁 피로감'만을 누적시켰다.

국제적으로도 현대국가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인권유린과 세계최대인 바미얀 석불상을 파괴하는 등의 비문명적 통치체제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경제사정도 개선되지 않으면서 탈레반 통치에 염증을 느끼는 비판여론의 수위가 점차 고조되어갔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결정적 계기는 9.11테러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미국은 9.11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빈 라덴의 체포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고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간 정부에 대한 군사보복에 나섰다.

미국은 9.11 두 달 후인 11월 아프간을 침공, 반 탈레반 세력을 지원해 수도 카불과 남부 제2도시인 칸다하르를 잇따라 점령했다.

이에따라 탈레반 지도부가 카불을 버리고 도주함으로써 사실상 5년에 걸친 탈레반 통치는 막을 내리게 됐다.

◇ 미국의 개입과 곤혹 =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아프간은 각 군벌세력이 할거하는 혼란상을 보이다 아프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회의 등을 거쳐 2002년 6월 반 탈레반 무장세력의 주력을 형성하고 있는 북부동맹이 친미성향의 과도정부를 수립했다.

과도정부는 헌법제정 등의 준비작업을 거쳐 2004년 10월 총선을 통해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아직 탈레반 반군의 활동은 이어지고 있고 나토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국제평화유지군(ISAF)도 현지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형국이다.

뉴욕타임스가 5일 미국의 아프간 개입정책을 `실패'로 규정한 것도 애초 계획과 달리 점차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아프간 내 상황을 보여준다.

신문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군사적으로는 승리를 거뒀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재건과 복구정책을 추진하면서 아프간 사태가 다시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이 그 단적인 사례로 지적한 것이 한때 아프간 변화의 상징이었던 헬만드주 라슈카르의 상황이다.

라슈카르는 냉전 당시 미국이 30여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개발,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해온 곳으로 한때 '리틀 아메리카'라고도 불렸던 지역이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정권이 들어서면서 복구와 부흥의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라슈카르는 그러나 미군이 탈레반과 알-카에다 잔당 소탕에 주력하는 사이 현지 행정당국의 부패와 무능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다시 탈레반 세력의 근거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빈 라덴 색출과 테러 근거지 분쇄라는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의도도 아직까지 달성되지 않은 상태다. 빈 라덴은 미국의 추적을 따돌리며 지금까지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탈레반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평화유지군에게 여전히 위협적 존재다.

이달 들어서도 남부 칸다하르 인근지역에서 나토 공군기가 추락해 영국군 14명이 목숨을 잃자 평화유지군 2천여명이 동원된 탈레반 반군 소탕작전이 전개됐다.

탈레반 반군 200여 명과 캐나다군 소속 4명이 전사한 이 전투는 탈레반 정권 붕괴 후 5년여가 지났지만 아프간에서 총성이 완전히 멎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간 상황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은 아편 문제다.

경제파탄 상태에 놓인 아프간에서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재배하는 아편 경작지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아프간에서는 6천100t의 아편이 생산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 세계 아편공급량의 92%에 달하며, 지난해 전체 아편 소비량보다도 30%나 많은 양이다. 아편 불법재배는 아프간 관료사회의 부패문제와도 직결돼있어 아프간 정부의 안정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아프간이 전화를 딛고 경제재건을 통해 피폐한 민생을 추스르기까지는 내부갈등 해소와 함께 국제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합뉴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