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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만 國軍이 곧 護國이다 -2015년版 징비록을 경계하며-
관리자 2015-06-03 19:20 조회 2,413
“건국 초기에는 각도의 군사들을 다 진관(鎭管)에 나누어 붙여서, 사변이 생기면 진관에서는 그 소속된 고을을 통솔하여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로 정돈하고 주장(主將)의 호령을 기다렸습니다…(지금의 제승방략 체제는) 서로 연결이 잘 되지 않으므로, 장수가 없는 군사들로 하여금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장수 오기를 천리 밖에서 기다리게 하다가, 장수가 제때에 오지 않고 적의 선봉이 가까워지면 군사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니, 이는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유성룡의 건의였다. 제승방략체제에서 진관체제로의 변경이다. 하지만, 선조는 받지 않았다. ‘지금껏’ 탈 없었다는 이유였다. 곧 임진왜란이 터졌다. ‘지금껏’과 다른 전란이었다. 20만이 밀고 들어온 대규모 전란이었다. 남(南)에서 밀고 올라온 최초의 전란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왜군의 진격 속도가 장수 도착 속도를 앞질렀다. 장수 기다리던 관군에게 먼저 닥친 건 왜군이었다. 성이 차례대로 무너졌다. 패했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뿔뿔이 흩어졌다는 표현이 차라리 맞다.
이런 선조가 오매불망 고대한 건 명나라 군대다. 1592년 11월 10일, 명나라 사신 정문빈(鄭文彬)이 “7만의 병마(兵馬)가 이미 산해관(山海關)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선조가 말했다. “우리나라가 불행하여 침략을 당하고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은 황상의 은혜입니다.” 정문빈이 “귀국의 관군은 얼마나 되며, 의병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었다. 선조의 답이 가관이다. “관군은 수만이 되고 의병은 지방에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여 그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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