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히딩크가 점찍었던 남자' 그는 지금…

cjn 기자 cjn@kyeonggi.com 노출승인 2011년 03월 14일 13:18     발행일 2011년 03월 14일 월요일     제0면

두 번째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지 10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아들이 축구 얘기를 꺼내자 어머니는 “미친놈!”이라며 버럭 화를 냈다. 펄펄 뛰며 반대해도 뜻을 굽히지 않자 어머니는 “축구하러 가려거든 엄마를 죽이고 가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아들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차기석(25 ·191㎝· 부천FC)이 그라운드로 돌아온 것이 2009년 3월이었다.


12일 3부리그팀(챌린저스리그) 부천FC와 경희대의 FA컵 1라운드 경기가 열린 부천 종합운동장에서 차기석을 만났다. ‘꽃미남 골키퍼’라는 타이틀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5년전과는 사뭇 달라져있었다. 차기석은 “많이 늙었죠? 지난 4년이 제겐 이십년 같았어요. 마흔살은 된 것 같아요”라는 말로 지나간 시간들이 쉽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히딩크가 점 찍었던 남자'

2005년 6월 네널란드에서 열린 2005 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의 스타는 단연 A대표팀에 막 승선한 신예 공격수 박주영(26 ·AS모나코)이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뒤 박주영보다 더 화제가 된 선수가 있었다. 바로 주전 골키퍼 차기석이었다.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치른 조별리그 3경기 전 경기에서 골문을 지킨 차기석은 U-20 월드컵을 관전하러 온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시선을 잡았고 대회가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이 이끌고 있던 PSV에인트호벤 훈련에 합류, 열흘에 걸쳐 테스트를 받았다. 유럽 진출이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전남 드래곤즈와의 3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음 행선지는 유럽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해 겨울, 차기석은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다. 신부전증이었다. 두 개의 신장이 모두 제 기능을 못했다. 투병 생활이 시작됐고 2006년9월 아버지의 신장 하나를 이식받았다. 이상 징후는 없었다.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재기 욕심이 화를 불렀다. “개막전에서 선발로 뛸 준비해라”는 감독의 언질을 받고 2년만의 프로 데뷔 기대감에 차있던 2008년 3월1일, 차기석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꼬박 하루 동안 사경을 헤맨 뒤 눈을 뜬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작은 아버지 신장 하나를 더 이식 받았다.

“제 속에는 신장이 네 개나 있어요”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차기석이었지만, 그의 표정과 말에는 힘들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독한 훈련이 키운 병마'

두 번째 신장 이식 수술 직후 차기석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실감, 좌절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더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는 그다.

“나 혼자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겠는데 부모님이 나로 인해 고통 받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운동하느라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그리울 때가 너무나 많았어요. 그 모든 것을 참고 내 목표를 위해 달려왔는데 한 순간에 목표가 없어졌잖아요. 더욱이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어요”

차기석은 무녀독남 외아들이다.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포항 송림초 5학때였다. 시원스럽게 공 던지는 모습을 본 선생님에 의해 투포환 선수로 발탁된 차기석은 학교대표로 나선 육상대회에서 축구선수 제의를 받았다. 당시 달리기가 느리다는 이유로 골키퍼로 지목된 차기석은 포철중 2학년 때 코치로부터 “축구에 재능이 없다. 그만 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납득이 안됐다.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반대하는 부모님을 졸라 상경을 허락 받았고 서울 경신중 축구부로 전학, 죽기살기로 축구에 매달렸다.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두 달만에 키가 15cm나 크면서 골키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차기석은 이후 16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 연령별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를 놓치지 않으며 착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당시를 회상한 차기석은 “팀에서 짤린 후 악 밖에 안남더라고요. 서울에 올라와서는 악으로 했어요. 대표팀에 뽑힌 이후에는 대표팀과 학교를 오가며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었어요. 국제대회를 다녀온 날에도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소속팀 경기에 나섰을 만큼 쉰 날이 없었죠. 경기를 뛴 날 조차도 개인 훈련을 절대 빼먹지 않았고요”

그러나 ‘독한 훈련’이 화가 됐다. 중학교 시절 신우신염을 진단받았던 차기석은 약을 복용해오고있었다. 약물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지만, 몸을 혹사하면서 신우신염은 신부전증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장에 치명타가 되는 게 피로거든요. 사실 쓰러지기 전에 이미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잘 하다가도 준결승 정도 되면 컨디션이 다운되는 걸 느꼈거든요. 몸 관리를 잘 했는데도 말이죠. 그런대도 참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고 바보스러운데,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회인데요. 더 나아가고 싶었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지만…”



'준비된 지도자 차기석'

두 번의 대수술을 받았지만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온 그였다. 차기석이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온 것은 2009년 3월이었다. 두 번째 수술 후 10개월만이었다. 다시 축구를 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축구를 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고, 어머니와 타협점을 찾은 것이 경주시민구단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한 차례만 경기하고 훈련도 야간에 두 차례 정도 실시하는 것이 전부인 3부 리그팀이었다. 훈련장 및 경기장을 포항 집에서 다닐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어머니를 설득했다.

더 이상 축구선수가 본업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가 안됐다. 더욱이 그가 다시 그라운드에 서자 프로팀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흔들렸다.

“유혹이 많았죠. ‘지석이 몸 괜찮아 보이는데, 다시 해도 되겠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때마다 흔들렸죠. 상대는 (경기에) 써먹으면 그만이지만, 내 인생, 목숨 책임져주지 않잖아요. 예전에는 그걸 몰랐죠. 그냥 그런 얘길 들으면 ‘진짜 복귀해야 하나…’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대한축구협회 3급 GK지도자 교육을 수료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9년9월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받은 차기석은 지난해 2급에 이어 1급 지도자 자격 코스를 모두 패스했다. 3시간씩만 자는 억척스러움을 보이면서 매번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냈다. 차기석은 현재 부천FC에서 골키퍼로 활약중이지만 3부 리그팀 선수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더 이상 축구선수가 본업이 아니다. 본업은 여의도고 축구부의 골키퍼 코치다.

“사실 예전에는 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이 안되어 있었어요. 선수를 포기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가르치다가도 잘 하는 아이가 있으면 질투가 났으니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러나 차근차근 지도자 과정을 밟아가면서 차기석에게는 새 목표가 생겼다. 자신처럼 어린시절 지도자에게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만큼은 철저히 좋은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주위에 보면 운동을 하면서 상처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내 제자, 내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지도자요”

아이들을 지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아서 시작한 축구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는 차기석이다. 그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얘기하는 그는 이미 준비된 지도자였다.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로 한국이 들썩거린 지난해 6월, 차기석은 일부러 월드컵을 외면했다. 한국이 치러낸 남아공월드컵 4경기 전 경기를 뛴 주전 골키퍼 정성룡(26 ·수원 삼성)의 활약상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정성룡은 청소년대표팀에서 차기석과 경쟁한 선수였다. 그러나 당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을 비롯해 2005 U-20 FIFA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국제대회 주전은 항상 차기석의 몫이었다. 자신도 있었다.

“아프기 전까지 제 목표는 남들이 꿈꾸는 국가대표가 아니었어요. 건방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대표는 당연히 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유럽 진출이 목표였죠. 에인트호벤 훈련에 합류했을 때는 정말 잘했거든요”

그러나 현재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장갑을 끼고 있는 사람은 차기석이 아니라 정성룡이다. 성인대표팀에서 경쟁해볼 기회조차 없었기에 그는 정성룡을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골키퍼를 물어보면 내 입에서 정성용 이름은 안나왔어요. 나와 함께 운동했던 사람이니까 더 인정하기 싫었던 거죠.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에게 정성룡 골키퍼를 배우라는 말을 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만큼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좋고, 얼마나 큰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힘든 길을 걷는 걸까요?”라고 묻는 차기석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말해요. 난 열심히 잘했어. 포기한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런 길을 걷게 된거야 라고.”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