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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조습 ‘물고기’

우울로 가득한 급진적 현대사 역설이 담는 한국사회의 실체

김종길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6년 08월 31일 21:24     발행일 2016년 09월 01일 목요일     제15면
냇가에서 천렵(川獵)을 하는 무리가 있네요. 아니 한밤중에 얼마나 물놀이가 하고 싶었으면 저렇듯 좋아서 웃고들 있는 것일까요? 그야말로 찢어지게 행복한 모습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 지금 사람이 아녜요.

다 헤진 바지저고리에 보따리를 등에 메고 총을 어깨에 걸쳤어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머리는 하얗게 산발인 데다 몸뚱이는 새카맣게 탔어요. 물고기도 깊은 바다 속을 사는 명태고요. 이것 참, 쉽게 밝혀서 말하기엔 뭔가 꿍꿍이가 단단히 박힌 장면이네요.

사진의 오른쪽 안경을 쓴 이가 작가 조습이에요. 그는 언제나 이렇듯 자신의 연출사진에 미학적 ‘발화자’로 등장해요. 한마디로 이야기꾼이란 얘기. 그가 주목하는 ‘장면’은 한국 근현대사의 어떤 길목들이에요. 우리 역사의 길목은 순탄치가 않아서 많은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죠. 이 장면은 뭘까요? 맞아요. 625전쟁!

뜬금없이 625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2012년 연초에 ‘해를 품은 달’이라는 드라마가 있었고, 그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서 다시 1년 여 동안 전국의 ‘사건지’를 돌면서 이런 연출사진을 담았어요. 모든 사진은 한밤중에 촬영됐고요.

그의 작품들은 그러나 드라마의 스토리텔링과는 무관한 듯해요. 달이 해를 품었다는 역설이 중요하죠. ‘흰그늘’이나 ‘해그늘’(日影)처럼 해를 품은 달은 카오스적인 창조성의 어떤 징후를 보여주죠. 일식(日蝕)은 고대 신화에서 우주 뱀(uroboros)의 창조성을 엿보는 장면이기도 했잖아요.

심리학자 에리히 노이만(Erich Neumann)은 “원, 구, 둥긂은 자기 충족의 모든 형태들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라고 했고, 또 그것은 “이전도 이후도 없는 것, 즉 시간이 없음이며, 위도 아래도 없는 것, 즉 공간이 없음이기 때문”이라고 했죠. 저는 그래서 조습의 장면을 이승과 저승 사이의 어떤 후경(後景)으로 봤어요.

후경의 세계에서 저들은 중음신(中陰身)일 거예요. 49재를 넘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자들인 거죠. 후경의 시간은 무의미해요. 위도 아래도 없고 이전과 이후도 없으니까요.

조습은 우울로 가득한 급진적 현대사의 후경에 주목했어요. 어쩌면 ‘식인증적 단계로 퇴행한 자’들의 이 현실은 전경과 후경이 어긋난 상태의 부조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지리산 일대를 누비며 암흑으로 둘러싼 후경의 실체를 직조했어요.

봄여름, 가을겨울의 시간성을 대련으로 붙여서 연출한 사진들. 그런데 암흑천지에서 빛을 발하는 비경처럼 중음신들의 모습에 해학과 익살이 넘치네요. 전경과 후경의 상징이 뒤바뀐 듯한 기이한 역설이 펼쳐지고 있는 거죠. 그 역설이 지금 한국사회의 실체일지 몰라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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