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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김월식의 ‘커뮤니티 아트’

김종길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04월 19일 15:51     발행일 2017년 04월 20일 목요일     제0면
▲ 김종길 컬럼

김월식 작가의 작업은 커뮤니티아트에서 공공미술 개념을 쏙 뺀 자리에 있어요. 그가 명명한 ‘무늬만 커뮤니티’라는 말은 그래서 헛말이 아니죠. 커뮤니티아트는 공동체예술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그의 방식대로라면 ‘나 좋아 미술’이고 ‘내 멋대로 미술’이에요.

사실, 말이 좋아 미술이지 그의 작업들은 ‘(무엇) 하기’의 놀이 개념에 더 가까워요. 그래서 ‘나 좋아 미술’은 자주 놀이와 충돌해요. 놀이는 ‘나 좋아’가 아니라 ‘우리 좋아’의 관계미학에 놓이기 때문이죠. 그는 ‘나 좋아’의 만족과 기분상승이 ‘우리 좋아’의 관계를 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파스칼 길랭은 ‘자기 관계적’ 예술과 ‘타자 관계적’ 예술로 설명한 바 있는데, 김월식 작가의 관계미학에서 보면 둘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자기관계’의 재미가 ‘타자관계’의 재미로 이어지면서 둘은 교호(交好)하고 혼합된다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재밌어야 네가 재밌고 우리가 즐겁잖아요. 그럼에도 ‘나(홀로주체성)’와 ‘우리(서로주체성)’는 수시로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생래적으로 둘의 지향점이 다르니까요. 그는 이 충돌의 예각과 둘레에 그가 추구하는 커뮤니티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그의 작업에서 ‘나’와 ‘우리’의 충돌은 부정의 싸움이 아니라 긍정을 향한 ‘서로 재기’의 긴장태로 읽혀요. 그래서 굳이 그의 작업의 공공성을 따진다면 이 서로 재기의 서로 간 까발리기, 서로 간 들통 내기가 아닐까 하는 거죠.

‘너/나’를 까발리거나 들통 내지 않고서 ‘나/너’의 놀이판을 돌릴 수 없는 노릇. 그러므로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우리는 자주 우아한 관객이 아니라 놀이의 적극적 구경꾼이 될 수밖에요. 구경하다 끼어들기도 하고, 끼어든 우리를 그는 ‘공공미술’이라는 기념비적 개념이 빠진 빈자리에 채워 넣는 거죠.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커뮤니티아트는 마당미술이라 할 거예요. 마당은 놀이를 품앗이 하는 참여자들로 인해 들풀 같은 예술을 싹틔우고요. 마당은 놀이의 풍자와 해학, 굿과 제의, 맞이와 배웅, 생산과 소비 등 삶의 요소들이 판치는 곳이에요.

그는 도시든 시골이든 혹은 국내든 해외든 그가 둥지 튼 곳을 마당으로 바꾸는 놀라운 재능을 가졌어요. 마당으로 이어진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들 속으로 섞이고, 섞인 그가 사람들을 모아 마당을 채우죠. 마당은 어느새 수많은 그물코를 가진 그물이 돼요. 관계망이죠.

핫바지나 몸뻬(일 바지)가 그렇듯이 마당은 일과 노동, 춤과 술, 게으름과 몽상, 일탈과 회귀, 비예술과 난장, 뽕짝과 클래식, 넝마예술과 숭고가 터지고 깔리고 솟아서 ‘빵꾸똥꾸야!’의 해프닝이 난무해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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