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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동백림과 동백나무

주용수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07월 16일 20:09     발행일 2017년 07월 17일 월요일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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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동백림사건. 중앙정보부는 윤이상, 이응로, 천상병이 포함된 예술가와 유학생 194명을 대남적화 활동자로 지목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북한과 내통했다는 것이 주요 죄목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기 위해 북한에 갔던 일로 작곡가 윤이상은 서울로 끌려와 고초를 겪었다. 윤이상과 박정희는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지만 해방이후 상충하는 삶의 궤적을 그렸다. 항일운동을 한 윤이상은 현대음악의 거장이 되었고, 일본군 장교를 지낸 박정희는 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1992년, 독일 데트몰트 음대에서 윤이상 75세 생일기념콘서트가 열렸다. 내가 단 한 번 선생을 만난 날이었다. 그가 G. Meerwein에게 헌정한 오보에 독주곡 <Piri>(1971)는 내게 영향을 깊이 준 작품이다. 동양의 도(道)를 서양음악 기법에 담은 곡으로, 도가(道家)사상의 ‘무위(無爲)’가 그 중심에 들어가 있다. 오월 광주가 무너진 후, 선생은 쾰른 WDR 위촉으로 관현악곡<광주여 영원히>(1981)를 쓰면서 극도의 분노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1917년, 선생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상처받아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이 태몽이었다. 그의 삶을 예언한 것이었을까. 유럽에서 용이 된 그는 굴욕을 당한 후 조국과 결별했다.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떠난 지금도 갖은 오해와 모욕을 견디며 가토우 공원묘지에서 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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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독일을 방문한 김정숙여사는 통영에서 동백나무 한 그루를 공수하여 묘소에 식수하고 그의 고단했던 삶을 위무(慰撫)했다. 선생의 의연함을 동백에 투영한 것은 아닐까. 학창시절 영향 받은 그의 음악에 감사를 표현했으나, 한국정부가 모질게 대한 행위를 사죄하고 그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017년, 정부가 예술인들을 압박한 사실이 문체부사태로 모두 드러났다. 동베를린사건이 나고 50년이나 지났지만, 힘을 쥔 자들은 박제된 신념이 지배하는 삶의 방식에 여전히 갇혀서 살아온 것이다. 이념의 족쇄를 차고 밀려들어간 갈등의 어두운 터널에서 우리는 언제쯤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권력은 예술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그 사건을 주도한 자들의 말로(末路)와 핍박 받았던 예술가들의 존재감을 상상해보라.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부디 나의 음악을 통하여 고국의 동포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고 내가 절실히 염원하는 민족의 평화적 사회와 화해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다 같이 노력합시다.” 동백은 붉고 굵은 꽃을 통째로 떨어뜨린다. 구차함 없이 목을 내던지는 충신의 기개를 닮았다. 선생의 묘비에 새겨진 ‘처염상정(處染常淨)’. 동백꽃 같은 그의 기품이 서려있다. ‘오염된 곳에 있어도 늘 깨끗하리라….’

주용수 작곡가ㆍ한국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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