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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멋진 싸움꾼

변평섭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1월 14일 21:01     발행일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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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에 있었던 네팔의 진도 7.8 대지진은 보기 드문 참사였다. 9천명의 사망자, 100만채의 건물 붕괴, 그런데도 그곳 사람들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네팔을 자주 방문하는 한 언론인에 따르면 70여 개의 학교가 무너졌지만 1년이 다 되도록 1개교도 복구를 못하였고, 국제적으로 많은 지원금과 구호품이 도착했으나 처리를 못하고, 답답할 만큼 논의만 거듭하는데 놀랐다고 한다. 심지어 구호품을 정부가 아닌 집권당인 급진네팔공산당(CPN- Maoist)에서 각 정당별로 배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빨리 구호품을 배정하라든지, 시설을 복구하라고 집단행동이나 관청에 몰려가 항의를 하지도 않았다. 힌두교가 80%가 넘는 나라여서 지진 자체도 그렇고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 그리고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두를 ‘신의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권리, 자기이익을 위해 싸우려 하지 않는 것. 그러니 발전도 없을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면서도 행복지수는 한국, 일본보다도 높으니 결코 부러울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나라는 너무 잘 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좁은 땅덩어리에서 같은 민족끼리 남북으로 갈라져 70년을 대립하고 있고, 국회에서부터 지방의회까지 안 싸우는 날이 없으며 같은 정당 안에서도 파벌이 붙었다 헤어졌다를 거듭한다. 아파트 재개발지역과 노동현장에서도, 방송국에서도 고함소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법조와 교육현장에서도 그렇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하는 현장에서까지 한쪽에서는 성조기를 흔들어 환영하고, 한쪽에서는 성조기에 불을 붙이며 반대를 외치는 나라…. 지구상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하긴 우리의 일상생활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 그리고 취업과 경제활동 등 치열한 경쟁 속에 하다 보니 모든 것이 전투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우리 오늘 하루가 얼마나 싸움판이었던가!

심지어 우리는 운동경기 때 응원을 하거나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는 학생에게도 ‘싸움’을 뜻하는 ‘화이팅(Fighting)’을 외친다. 우리나라에서나 통할 구호인데도 한국적 감정을 표현할 마땅한 구호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간바레(がんばれ)’처럼 우리도 ‘힘내라’ 할 수 있지만 강하게 와닿지는 않는 것. 하긴 이런 전투적 정신, 그것이 오늘 우리의 발전을 이룩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금도(襟度)’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권후보로 이명박, 박근혜의 진흙탕 싸움이 한창 고조됐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은 ‘한국의 정치는 인의(仁義)가 없는 싸움’이라는 칼럼을 게재했었다. 그 내용에 인용된 것을 보면 ‘일본인은 신입사원 연수 때 서로 힘내라고 격려하기 때문에 특출한 사람은 없어도 낙오자 역시 없다. 미국인은 다른 사람은 상관 않고 자기 길만 열심히 걷기 때문에 낙오자가 있다. 한국인은 뒤에 오는 사람이 앞에 가는 사람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일본인의 지적이라 불쾌한 이야기이지만 누가 죽어도 저주를 퍼붓고 무슨 일만 터져도 욕설이 도배를 이루는 SNS의 댓글을 보면 소름 끼치는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에 감염되어 있는 ‘싸움 정신’은 오염될 대로 오염되고 ‘금도’를 잃었다. 우리의 ‘싸움 정신’에 ‘금도’를 되찾을 때 우리는 더욱 가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정말 우리 멋진 싸움꾼이 될 수 없을까?

문득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망명지 미국에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상투를 한 한국인이 서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것을 보고는 고함을 쳤다.

“우리 땅에서 그렇게 싸우고도 모자라 남의 땅에 와서도 싸우는 거요!”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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