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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경기, 천년보물] 직금기린흉배

조선시대 대군·왕자의 상징

정미숙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2월 22일 20:27     발행일 2018년 02월 23일 금요일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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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심온의 5대손인 심융(1523~1602)의 부인 나주박씨(16세기 후반 추정) 묘에서 대군의 상징인 ‘직금기린흉배織金胸背麒麟’가 출토되었다. 기린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린(Giraffe)과는 형태와 의미가 사뭇 다른, 고대 중국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복되고 길할 조짐을 나타내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고,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는다 하여 인수(仁獸)라 하였다. 생김새는 일반적으로 용의 얼굴, 사슴의 몸, 소의 꼬리, 말의 발굽을 가지고 있고, 이마에는 뿔이 있다고 묘사된다.

실제로 나주박씨의 묘에서 출토된 기린의 모습을 보면 머리에는 뿔 하나가 있고, 몸은 비늘이 덮여 있다. 풍성한 꼬리털과 머리털, 위로 향한 턱수염 등은 용의 모습도 보이고, 특히 뿔 하나가 특징인 해치(해태)와는 더 비슷하다. 자세는 비스듬히 누워 왼쪽 앞다리를 살짝 들고 있는 모습으로, 다리 뒤쪽에는 털이 나 있고, 발굽은 두 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다리 앞쪽으로는 화염(火焰) 모양의 영기(靈氣)가 뒤를 향해 뻗어 있다.

조선시대 흉배장식이 처음 시행된 것은 단종 2년(1454)으로 대군에게는 ‘기린흉배’를 장식하도록 하였고, 1485년 <경국대전> 역시 ‘흉배대군기린’으로 법제화한 바 있다. 이후 인조 4년(1648) 기린흉배는 대군의 상징임을 언급한 대목이 보이며, 영조 21년(1745) <속대전>에는 흉배제도가 다시 정비되면서 대군만이 아닌 왕자와 대군 모두 기린(麟)흉배를 쓸 것을 제도화한 것이 보인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기린흉배는 규정상 대군, 왕자만이 가능한 흉배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기록 이후 기린흉배는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금사자수기린흉배’에서 그 실물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자료가 나주박씨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직금기린흉배’가 되는 셈이다. 아쉬운 점은 대군의 상징인 기린흉배가 정작 대군의 것으로는 실물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나주박씨 역시 남편인 심융의 관직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호군(龍衛護軍)’라 하였으니, 절충장군은 정3품, 용양위호군은 종4품의 무관직이다. 

<경국대전>에는 무관의 흉배로 1·2품은 호표(호랑이와 표범), 3품은 웅비(곰)가 명시되어 있다. 나주박씨가 남편의 품계를 따랐다면 4품은 흉배 규정이 없으니, 무관 3품에 준했다 하더라도 웅비흉배를 달았어야 했다. 당시 흉배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풍조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번 ‘직금기린흉배’의 출토는 조선전기에만 수차례 언급되었던 ‘직금흉배기린’에 대한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울러 벌레를 잡아먹지도, 풀을 밟지도 않고 걷는다는 신령스러운 동물이 경기 천년의 해를 맞이하여 출현한 것은 경기도의 태평성대와 길할 조짐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지!

정미숙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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