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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괴물 또는 프랑켄슈타인

박설희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5월 16일 21:37     발행일 2018년 05월 17일 목요일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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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A가 B를 ‘괴물’이라고 표현한 시를 문예지에 발표했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그건 ‘괴물’이라는 단어에서 자동적으로 연상된 이미지로 그만큼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대명사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프랑켄 푸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요망한 괴물과 같은 식품이란 뜻이다. 그런데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다. 괴물은 이름을 부여받지도 못한 채 창조주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나 자신의 자아 같은 것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소. 내게는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핏줄도 없었소. ‘내가 떠나온 길은 빈 칸’이었고 나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도 없었소.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 그건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지? 내 운명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지만 풀 수 없었소.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추악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버림받은 괴물의 말이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영문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창조주에게 항변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출간한 것이 1818년이니 올해로 꼭 이백 년이 되었다. 사람의 손으로 창조한 끔찍한 괴물이 창조주를 위협한다는 내용으로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담겨 있으며 도덕적 책임이 없는 과학 발전이나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괴물을 중심으로 재조명되면서 생명의 탄생, 죽음, 가족, 과학, 신, 부모(창조주)로서의 의무, 계급과 젠더, 소외와 의사소통의 문제 등과 같은 묵직하면서도 다양한 주제들 때문에 여전히 현재성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본·드라마·팝송·동화·만화·인형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접목이 되고 있고 특히 영화를 통해서 끝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고딕양식의 공포소설이지만 SF소설, 로봇 장르의 원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화 <에이리언>으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10년대에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잇달아 발표했는데 두 영화 모두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인상을 준다. 일본의 문예비평가 오노 슌타로에 따르면 원래 로봇이라는 단어는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발표한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희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차베크가 설정한 로봇은 기계가 아니라 미국의 로섬사가 인공 단백질로 만든 인조인간이다.

올해 3월에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환경이나 인공지능 때문일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공상과학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처럼 ‘로봇이 인간에게 반역할 것이라는 기계 혐오에 기인한 서구의 뿌리 깊은 불안’을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는 창조자인 인간이 로봇에 대해 가지는 혐오, 부정, 질투, 열등감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감정을 가리킨다.

다시 처음의 괴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간과 괴물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인간은 언제 괴물이 될까?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 역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대가 한참 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인간은 자기반성이 없을 때 괴물이 된다. 그리고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갈 수도 있다. 끝없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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