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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경기, 천년보물] 주목받지 못하는 유물-발괄(白活)

단순·투박하지만… 생활상 고스란히

곽창호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6월 06일 20:42     발행일 2018년 06월 07일 목요일     제18면
▲ 발괄
▲ 생원댁 노비 순매가, 논의 매매와 관련한 분쟁에 대해 관청에 호소한 내용.

대부분 사람들은 역사 박물관을 갈 때, 옛 것을 보러 간다고 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희귀하고, 영광스러운 유물들을 만나며 자랑스런 옛 조상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그런 유물들이 옛 사람들 대부분의 실제 생활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당시의 고급문화는 현재의 고급문화와 마찬가지로 누리는 대상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옛 선조들의 삶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럼 실제 생활을 보여주거나 추측해볼 수 있는 유물은 없는 걸까? 단순하고, 투박하고, 흔하면서, 애절하기까지 한 유물 종류를 소개해 볼까 한다. 물론 옛 삶의 전체 모습을 살피는 건 불가능하지만 겉으로 꾸미지 않은 실생활의 기록 중에 조금 특이한 것 말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억울한 일들에 대해 행정관청에 호소하는 경우는 예로부터 많았다. 지금은 ‘민원’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전통사회의 관청은 행정, 사법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므로, 단순 민원을 넘어 고소, 청원, 소송 등을 포괄했으며, 이때 서식에 따라 제출한 문서를 발괄 또는 소지(所志)이라고 한다. 

발괄은 순우리말의 이두식 표기법이지만, 한자 사용을 품위있다고 생각해온 문화 때문에 현재까지도 소지라는 한자식 표현도 많이 쓰인다. 또한 다른 고문서들 처럼 내용에도 이두가 많이 사용됐다. 실생활과 밀접하고, 직접 관련된 서민들이 주 대상이었기 때문에 한문 문장이 아니라 상당히 거친 이두문이 사용된 것이다.

이 발괄을 통해 서민들은 각종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에 관한 일들을 관할 관청에 제출하고 고을 원(員;부윤,목사,부사,군수,현감,현령 등)의 판결이나 결정을 바랬다. 고을 원은 이를 보고, 발괄의 왼쪽 빈 여백이나 뒷면, 어떤 경우는 다른 종이를 덧붙여가면서 판결이나 지령을 쓴 후에 관인을 찍어 확인하고, 다시 돌려주었다.

이것을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이것은 고소에 대한 결정이고, 청원에 대한 답변이면서,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기에 아주 소중하게 보관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긴 세월을 넘어 현재까지 그 모습을 남길 수 있었고, 현재 박물관에서 볼수 있는 고문서류 중 아주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내용은 서민들의 실재 생활 속 이해관계가 담겨있어서 대단히 다양다. 주로 재산분쟁, 조세에 관한 사항, 손해배상, 원한 등 고소, 고발들을 볼 수있는데, 특히 산송(山訟:조상의 산소와 관련한 소송)이 상당히 많다.

형식은 대체로 신청자의 주소·성명·내용·수신처·연월일순으로 되어 있다. 여러명이 집단으로 작성한 경우는 등장(等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고을 원에 올렸던 1차적인 발괄의 처분에 불만이 있을 경우는 의송(議送)이라는 서식으로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에게 다시 올렸다.

또 전통사회의 계급적인 차별도 반영되었는데, 양반들의 경우 발괄이나 소지라는 명칭의 사용보다는 단자(單子), 원정(原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서식도 좀 달랐고, 여러명이 연명할 경우는 상서(上書)라고 불렀다.

비록 문자해독이라는 이해상의 장벽과 문서라는 형식상의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발괄은 어려운 학문, 고급의 문화, 정치적 이해관계 등 양반들만의 생활을 다룬 기록이 아니다. 서민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너무 많아서 그 존재와 가치를 알아보기 힘든 유물이다.

경기도박물관 수석학예사 곽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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