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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미안하고 죄송해서

강종권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6월 06일 20:54     발행일 2018년 06월 07일 목요일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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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 주간을 살면서 나라를 생각하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6월의 마지막 한 주간을 살아갈 때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더 죄송스런 마음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도 같다. 왜냐하면 이 나라가 수많은 분의 피와 희생과 헌신의 터 위에 세워졌는데 그분들의 피와 희생과 헌신이 무색할 정도의 정치적 횡포를 자행하는 무뢰한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한 국민에게 한 대 맞았다고 깁스하며 떼 지어 농성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어서 호출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휠체어를 탄 중환자가 되어 엄살 부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면서도 이때만 되면 호국의 영령들을 볼모로 마치 자신들만이 이 나라의 수호자가 된 것처럼 으스대는 꼴을 볼라 치면 주권을 가진 국민 노릇 못한 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한마디로 단국의 개국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는 이 나라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무색하다고 할 뿐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할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이 사라지고 당파와 계파의 이익에 몰두하는 것이 마치 유교 조선의 망조를 보는 듯하다.

‘백성’(民)을 위해 세워졌다던 그 조선이 사대부(士大夫)만 위하고,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몰두하면서 인의예지염치(仁義禮智廉恥)의 근간을 잃어버렸을 때 나라를 통째로 늑탈당하는 국치를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국민의 분노를 애써 기만할 뿐만 아니라, 당리당략을 위해서 억지 부리고, 겨레의 소원인 통일 모색마저 부정하려는 졸렬함을 목격하면서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슬기로움과 청렴함에 더하여 부끄러움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금방이라도 닥쳐올 망조를 보는 것 같아 호국영령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요즘 유행어로 ‘뭐가 중한지!’도 모르고 까불어대는 게 물가에 노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아 앞선 선각의 선열들 보기에 민망하기 그지없다.

구약성서 잠언에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잠언 6:16-19)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데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잠언 6:27-28)라고도 하였다.

한마디로 부끄럼 당할 나쁜 짓 하지 말라는 말이다. 신(神)이 극도로 미워하고 싫어할 정도의 교만, 거짓, 음해, 모략, 음모는 사람도 반발하고 거부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할진대, 그것을 살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 인면수심(人面獸心), 자고(自顧)하며 까불대기만 하니 불을 품은 옷이 타 버리고, 숯불을 밟은 발이 데어 버리듯 자중지란(自中之亂)하다가 부끄럼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염치가 없다. 기꺼이 목숨 버려 이 나라를 지켰던 분들의 희생과 헌신 앞에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해소할 수는 없을까?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바른 표심으로 정의도 수호하고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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