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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일본의 정체성

신길수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8월 07일 21:09     발행일 2018년 08월 08일 수요일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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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계의 화두 중 하나는 대물림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기 위한 개혁안 추진이다. 일본 중의원 456명 중 120명(26%)이 대물림 의원이며, 여당인 자민당은 의원 218명 가운데 72명으로 3명 중 1명꼴인 34%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세습 국회의원의 비중이 높은 현상은 자민당이 1945년 종전 이후 거의 70년간을 일당 집권을 해온 것과 함께 일본식 민주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자유’라는 이념을 향한 시민의식의 능동적인 발로로 인해 혁명이나 투쟁을 통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종전 후 미국에 의해 피동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이후 일본의 정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시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정치 지도층이 패전으로 파괴된 국가 경제의 부흥을 목표로 하는 국가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은 이를 수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전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은 근대적 의미의 비판적인 시민의식이 함양될 기회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은 근대문명은 이룩했으나 의식의 근대화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자신의 과거사를 미화하려고 할 뿐 민주적 가치관을 거울삼아 비판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것은 일본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데, 과거사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성찰의 부재는 아쉬우며 이러한 부재는 일본 근대화의 기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본이 19세기 말 동북아 문명체제의 변두리에 있지 않고 중심부에 있었다면 근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당시 중국과 한국은 자신의 문명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문명 체계를 갖고 있었으나, 일본은 동북아 문명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서양 문명의 출현에 대해 보존해야 할 독자적인 문명관의 소유 의식이 없었기에 서양문명에 순응하는 의식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일본은 철학적 관점이 아니라 항상 실용적 관점에서 외국 문명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기에 서양 문명과 과학의 우위를 즉각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북아 문명을 철저하게 비하하는 것인데,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제시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1894년 청ㆍ일 전쟁을 ‘야만’(野蠻, 중국)’과 ‘문명’(文明, 일본)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일본의 전의를 독려했다. 이어 약 10년 뒤 러ㆍ일 전쟁에서 또다시 승리하면서 일본은 서양 제국으로부터 동양의 강국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후의 일본의 역사는 중국 침략, 동남아 식민지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등 성찰할 점이 많은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일본은 현대적 가치관의 관점에서 이를 성찰해 미래의 일본의 방향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 세계관에 빠져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된다. 그러기에 일본은 아직 한국에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을 만한 현대적 사유 체계를 수립치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이 중세 800여 년간 약육강식의 봉건영주 시대를 거치면서 문명을 보는 시각이 항상 물질 우위적이었으며 철학적 이념이 주도해 나가는 가치우위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전통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진정한 모습을 잘 꿰뚫어보면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립해 대일본 정책을 추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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