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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경기, 천년보물] 조영복의 ‘연행일록’

조선시대 문신의 청나라 여행기

정태란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8월 08일 19:37     발행일 2018년 08월 09일 목요일     제32면
▲ 연행일록1
▲ 연행일록
연행(燕行)이란 조선시대 사행(使行)을 일컫는 말로 연경(燕京) 즉 북경(北京)을 다녀옴을 뜻한다. 사신으로서 명나라 및 청나라에 다녀온 관료들은 이러한 연행의 기록을 자신의 문집이나 일기로 남기기 마련이었다. 외교적인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타국을 방문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보고들은 것들을 기록한 연행록은 일종의 사적인 여행기인 셈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는 대표적인 연행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은 1년 내내 크고 작은 사유로 중국의 명청에 사신을 보냈다. 그중 정조사(정월에 황제를 알현하는 사행)·동지사(동짓달에 황제를 알현하는 사행)·성절사(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행)가 삼절(三節)이라고 불리우는 정기적인 사행이었고 그 외에는 사은사 등 별도의 임시사절이 있었다. 이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에서 가장 의례적이면서도 중요한 외교활동으로 이에 참여한 조선시대 관료들은 중대한 임무를 갖고 북경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회동관에 머물며 명청의 관료 및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적 사절의 역할 또한 병행하기도 했다.

조선 숙종대의 문신 조영복은 정사 조도빈, 서장관 신절과 함께 동지사의 부사로서 북경에 다녀왔다. 경기도박물관에는 조영복이 1719년 11월부터 그 다음해 3월까지 5개월 가량 청나라 북경을 다녀오면서 그 여행과정을 기록한 <연행일록>과 떠나기 앞서 당시 조정의 대신들과 동료들로부터 받은 송별시문을 모은 별장첩, 그리고 당대에 그가 명현들로 받은 간찰들이 함께 소장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경기도유형문화재 134호로 일괄지정 되어있다.

▲ 연행일록2
▲ 연행일록
조영복은 성경(盛京, 오늘날의 심양)을 지나기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사행 동안의 일련의 여정에 관하여서 그다지 상세하게 적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사신단의 규모, 청나라를 가기까지의 여정, 청나라에서 견문한 것들 등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공적인 기록 사이사이의 빈칸들을 나름대로 채워볼 수 있다. 조영복은 동지부사로서 공적으로는 청나라 강희제를 만나기도 했고 사적으로는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평소의 제도적 관심사의 궁금증을 풀거나 유명한 서화가들의 작품을 접하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하며 만족스럽게 귀국하였다. 그는 청에 다녀온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하였으니, 그의 일대기 중에서도 <연행일록>은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손쉽게 간직할 수 있다.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혹은 제삼자가 그 기억을 엿보고 싶을 때 사진을 꺼내보며 비교적 원형 그대로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오래 전의 과거는 문자로 기록된 것만을 통하여 그 순간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실제와 꼭 들어맞지 않더라도, 그 기록을 읽음으로써 과거의 그 장면을 무한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그때 그 순간을 기록한 화자가 되어 경험할 수 없는 과거를 여행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태란 경기도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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