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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을 기억하며

김인희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8월 08일 21:30     발행일 2018년 08월 09일 목요일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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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은 로이 토비아스(이용재)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2년이 되는 날입니다. 1년 전 로이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자는 취지를 담아 제자들과 지인들이 모여 헌정 공연을 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생님의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제자들이 모였고 선생님의 사랑이 매개체가 되어 제자들을 한자리로 모아 주신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매년 공연을 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4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자는 약속과 함께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올해는 큰 공연이나 행사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업적과 제자들을 사랑해주신 마음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싶습니다.

로이 토비아스 (Roy Tobiasㆍ한국이름 이용재) 선생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조지 발란신의 직계 제자로 뉴욕 시티 발레단 창단 멤버이자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셨습니다. 일본 순회공연에 참가하면서 동양의 매력에 푹 빠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30여 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발레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1988년 유니버설 발레단 제3대 예술감독으로 초청되어 8년간 단원들을 이끌어 주셨으며 다양한 작품을 안무하면서 창작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갖도록 제자들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과 함께 예술감독 취임하여 어려운 민간 발레단 운영에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전원생활을 좋아하셨던 선생님께서는 경기도 여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한복을 입고 마당에 나와 앉아 계시다가 제자들이 방문하면 환한 미소로 제자들을 맞아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희귀병으로 고생하셨는데 15년 전만 해도 저는 사람이 나이 들고, 일을 못하고, 몸이 아픈 거에 대해서 진지하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고 그때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15년 전 내 나이가 지금 나이였다면 훨씬 더 많이 선생님을 이해하고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국적까지 바꾸신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을 좀 더 이해해 드리고 사랑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너무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몰라 더 오래 사시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 해 드린 것 같아 많이 죄송합니다. 발레와 제자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신 푸른 눈의 한국인 로이 토비아스 선생님이 한국 발레 발전을 주도한 역사적 인물로서 반드시 기억되길 희망합니다.

저는 지금 막내 언니 가족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13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치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엄마는 같은 질문을 계속 하시는 것과 화장실에서 넘어져 골반뼈 골절로 수술을 받으신 뒤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하신 것 외에는 다행히도 일상생활을 하시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친정아버지와 로이 선생님과의 슬픈 이별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고 이미 먼저 떠나신 분들께 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는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리허설 없이 단 한 번 사는 삶을 사는데 이렇게 멋진 선생님을 만났고 100% 저를 믿고 응원해준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새벽 2시라도 전화하면 달려 나와줄 친구들과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김인희 발레 STP 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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