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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어주는남자] 젊음

‘젊음’의 생기와 설렘

신종호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8월 28일 19:38     발행일 2018년 08월 29일 수요일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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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파블로 네루다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향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性的) 과육,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
집들 속에 숨어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

《네루다 시선》,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1904년 칠레 국경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열아홉 살에 첫 시집 <황혼 일기>를 발간했다. 일찍부터 그의 비범함을 알아챈 멕시코의 문호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는 “그가 손을 대는 순간, 모든 것은 시가 되었다”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감각적인 연애시에 출중했던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민중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세 번의 결혼, 빈궁한 외교관 생활과 여행, 도피와 망명을 겪어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시의 행보는 혁명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이탈리아에서의 망명생활 중 마리오라는 우편배달부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시를 배우고자 하는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라고 말한다.

감정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감각의 문을 열고 온 몸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젊음과 늙음은 시간의 길이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농도와 깊이로 구별된다. 나이가 젊을지라도 감각이 무디면 젊다할 수 없다. 반면 나이가 들어도 감각이 생동하면 젊다할 수 있다. 네루다의 시 <젊음>은 젊음의 생기와 설렘을 감각적 비유로 잘 전달하고 있다. ‘매운 칼 같은 향내’라는 표현은 설명을 통해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감각과 경험으로 느껴야할 표현이다. ‘설탕 같은 키스들’이라는 표현은 독자에게 ‘달콤함’이라는 공통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달콤함의 농도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너무 달아서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강렬한 키스도 있겠고, 가볍게 달콤함만 남기는 키스도 있을 것이다. 감각의 문을 얼마나 여냐에 따라 경험의 깊이는 달라진다. 그러하기에 네루다의 시 <젊음>은 문맥으로 읽기보다는 감각으로 읽어야 한다. ‘생기의 방울’, ‘성적(性的) 과육’, ‘방’, ‘창’, ‘야생 초록의 골짜기’, ‘램프’라는 내밀한 시어들과 ‘미끄러지는’, ‘달콤한’, ‘설레는’, ‘잠자고 있는’, ‘숨겨진’, ‘뒤집어엎은’ 등의 술어들이 빚어내는 ‘한창때’의 풍성한 생기, 그것을 이성(理性)이 아닌 감각으로 음미할 때 시 <젊음>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생각함으로 존재한다기보다 감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일 것이다. 젊은 감각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창때는 옛날이 아니고 모든 이들의 지금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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