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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시간은 익어간다

정부경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9월 05일 10:11     발행일 2018년 09월 05일 수요일     제0면
▲ 정부경
▲ 정부경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했을땐 여유로운 저녁의 삶을 상상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천천히 거닐며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호미를 들고 땅을 파서 감자, 콩, 옥수수, 고추, 고구마을 심고, 돌보고 수확하는 자연의 삶을 누릴수 있을거라는 설레임이 있었다.

귀농을 하고 시골의 삶을 선택한지 올해로 18년, 그속에서 같이 땅을 파 작물을 심었던 어린 아이들은 자라나 군대에 가고, 대학을 가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도시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소한 노동과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지었던 나와 아이들의 아빠는 지금 항아리속에 시간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을에 콩을 수확해 타작을 하고, 가마솥에 콩이 뭉근하게 익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익은 콩을 형태를 잡아 메주를 만들어 가끔씩 뒤집어 주며 눈쌓인 겨울을 보낸다.

정월에 담근장이 맛이 있고 군내가 안나 오래 보관할수 있다는 어머님의 말씀대로 정월 즈음 같이 겨울을 보낸 메주를 항아리에 띄워 맛이 익어가기를 기다린다. 고추장은 해마다 담가야 맛이 있고 된장과 간장은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진다고 한다.

맛이 익어가는 동안 이곳에서 지낸 시간 만큼, 보관했던 간장은 씨간장으로 시골생활을 깊게 만들어 준다. 오래된 된장은 추억의 맛으로, 내집에 오는 손님들의 식사로, 그들이 어린 시절 맛보았던 어머님들의 손맛을 기억하게 해준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적게나마 해마다 되풀이 되고 식탁위에 놓인 내 기다림의 시간은 맛있게 익어간다.
정부경 귀농인·옛음식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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