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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 간토 대지진과 역사의 진실

임봉대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9월 09일 21:26     발행일 2018년 09월 10일 월요일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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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일본 도쿄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재일동포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 전하기 위해 2005년 도쿄 미나투구에 개설되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을 방문한 9월1일은 간토(關東) 대지진이 일어난 지 9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23년 9월1일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발생했던 큰 지진으로 15만 여명이 사망, 실종되고 10만 채 이상의 건물이 전파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정부 조직이 마비되고 간토 지방은 총체적인 혼란에 빠져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문제는 간토 대지진의 2차 피해로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대규모 학살을 당한 것이었다.

대지진의 극심한 피해 때문에 민심이 흉흉할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와 약탈을 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일본인 자경단들이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가하여 6천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수치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어려운 탁음을 발음해 보도록 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무조건 죽였는데, 조선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일본인들 중 일부도 희생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중국인들의 희생에 강력한 항의를 하였지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와 약탈을 했다”는 것이 날조된 유언비어임이 밝혀졌음에도 희생된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나 진상 규명이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온갖 고생과 희생을 하였던 재일동포들 중 많은 이들이 해방 후 귀국하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본에 남아 있던 재일동포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새마을운동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 대한민국의 발전에 아낌없이 힘을 보태왔다.

내년이면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1919년 2월8일 독립선언을 한 사건이었다.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8 독립선언과 3·1운동에서 보여준 조선인들의 자주정신과 독립의식에 대한 일본인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뛰어난 IT산업과 한류열풍으로 세계 각국에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일본은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고, 한국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본인들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들의 삶과 권익을 위해 아직도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대표팀이 일본대표팀을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스포츠의 매력은 경기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승패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모두가 동등한 가운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임봉대 인천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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