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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고약(苦藥) 정치

이도형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8년 09월 11일 20:10     발행일 2018년 09월 12일 수요일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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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통계청장과 기상청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차관급 인사는 당초 인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각종 논란이 겹치면서 문 대통령이 문책성 인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상청의 잦은 오보로 인해 ‘중계청’이란 오명과 제19호 태풍 ‘솔릭’의 ‘호들갑’ 예보로 인한 과잉 대응 등 국민들에게 불신감을 줬다는 점에서 기상청장의 교체는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통계청장의 경질은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부문 가계동향’에 대한 표본을 늘리는 과정에서 소득5분위(하위20%) 계층을 과도하게 늘려 잡아 결과적으로 빈부격차가 커져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 주요 경질 사유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즉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는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당초 가계동향 발표를 없애려 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통계 존치’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표본가구를 5천500가구에서 8천가구로 늘려 잡았다. 이 과정에서 소득하위 20% 가구 수가 과도하게 포함되면서 지난해와 비교할 경우 격차가 매우 커진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빚어내게 됐다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표본 차이가 통계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국회에서 “표본 오류로 분배 격차가 심화됐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명 당시 문재인 정부와 정책 ‘코드’가 잘 맞는다는 평이 따랐던 황수경 전 청장. 하지만 청와대는 통계청이 경제지표를 조사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황 전 청장을 전격 교체하더니 급기야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줄 수 있도록 통계청에 새로운 조사 방법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청와대 입맛에만 어울리고, 국민들에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맞춤형 통계’가 나올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시대 대사헌을 지냈던 ‘고약해(高若海)’라는 인물이 있다. 순우리말 ‘고약하다’의 어원이라고 알려진 고약해는 어전에서 세종을 노려보고 서슴없이 직언을 일삼는 건 예삿일이고 지엄한 어명에 대꾸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곤 했다. 세종이 하도 기가 막혀 마땅한 이유 없이 반론을 펴는 신하를 보면 “이런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종은 이런 고약해를 형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의 자리까지 등용한다. 또 자신의 세자 임명을 강력히 반대했던 황희 정승도 내치기는커녕 무려 24년간 재상을 시키는 등 많은 세제 개혁과 정책을 추진했다.

‘양약고구(良藥苦口)’, 즉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 유방이 오랜 전투에 지쳐 궁궐에서 쉬려고 할 때 부하 번쾌와 장량의 거듭된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전쟁터로 향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충언이나 직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이번 통계청장 인사를 보면서 과연 문재인 정부가 쓴 소리, 고약한 비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염려스럽다.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객관적 수치를 통해 제대로 된 경기 부양책을 모색해야지, 통계 자체를 부정하거나 입에 맞는 달콤한 통계로 현 상황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이나 진나라를 정복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언, 고약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가 펼쳐지길 기대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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