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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세월호 참사

선장은 도망가고 정부는 우왕좌왕 生과 死의 순간… 진정한 영웅들

구재원 기자 kjwoon@kyeonggi.com 노출승인 2014년 05월 11일 16:39     발행일 2014년 05월 01일 목요일     제0면

   
▲ 최후의 순간까지 승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故 박지영씨 사진_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수백여 고교생들의 학창시절 마지막 추억, 그리고 50년지기 동창생들의 끈끈한 우정도, 삽시간에 검푸른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다.

여객선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3박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 승객, 승무원 등 모두 476명의 탑승객 중 174명만이 구조됐다.

사망자 및 실종자 포함 총 302명 중 사체 인양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미 100명을 훌쩍 넘은 사망자 수만 늘어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58분께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남서쪽 3㎞ 해상에서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6천825t급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 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여객선은 신고 접수 2시간 20여분만에 완전 침몰했다.

기회는 있었다. 침몰 전 초기대응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훨씬 더 많은 승객들이 생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장을 비롯한 선박승무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등 미흡한 초동조치는 더욱 큰 참사로 만들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대다수의 승객들이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그대로 믿고 따라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안일한 사고대처와 승객의 안전을 저버린 채 자신들의 목숨 챙기기에 급급했던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의 행태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승객들이 안내 방송을 믿고 있던 사이 선장과 항해사 등은 교신이 끊긴 오전 9시37분께 자기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 밖으로 탈출했다.

이에 반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살신성인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삶’이라는 희망을 남겼다.

사고 직후부터 시작된 구조작업에서 온 국민이 바라는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고 사체만 인양되고 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기적을 바라고 있지만,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무책임한 선사와 선장, 선박직 선원의 행태는 온 국민을 절망에 빠뜨렸다.

또한 정부의 재난 대응은 매뉴얼도 시스템도 없이 우왕좌왕했고, 결국  더 많은 이들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대한민국을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 참사. 그 아픔을 치유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기약 없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보다 남을 위해 한목숨 바칠 수 있는 ‘소리없는 영웅’들이 있기에 한가닥 희망을 본다. 사람으로 상처받은 아픔을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게 해준 영웅들이여. 하늘에서 고이 잠드소서.   


   
▲ 4월 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인천∼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 사진_해양경찰청 제공

故 박지영씨 “뛰어 내려” 마지막 외마디…
10여명의 학생들에 구명조끼 입힌뒤 침몰하는 세월호와 바닷속으로 사라져
세월호에서 선내 방송을 담당했던 박씨는 구명조끼를 주변의 학생들에게 양보한 뒤 침몰한 세월호와 운명을 같이했다.

사고 당시 박 씨와 함께 3층 로비에 있었던 김수빈군(16)은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있었는데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입어라’”며 건네고, ‘움직이지 말고 난간을 꼭 붙잡고 있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군에 의하면, 김군과 학생들이 “누나도 구명조끼 입으세요”라고 울면서 소리쳤지만, 박씨는 끝까지 10여 명의 학생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키고 “움직이지 말고 끝까지 난간을 붙잡으라”고 지시했다.

김군은 “배가 점점 더 심하게 기울면서 비상구 쪽으로 몸이 완전히 쏠렸는데, 누나가 우리를 다독이면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이후 구조대가 도착하자 승무원 누나가 ‘전부 뛰어내려’라고 소리쳐 모두 뛰어내렸다”고 전했다.

4월 22일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박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9시 박씨의 시신이 차량에 운구되자 유가족들은 “지영아”라고 박씨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보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함께한 시민들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군 채 뜨거운 눈물만 쏟아냈다.

박씨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벌써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어쩌느냐…. 제발 돌아와”라며 통곡,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박씨는 2012년 다니던 수원과학대를 휴학하고 세월호 선사인 (주)청해진해운에 입사해 승무원으로 일했다가 이번 참사를 맞았다.

한편 박씨의 의로운 행적이 알려지면서 시흥시는 박씨의 의사자 선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만명의 누리꾼들도  참여하며 의사자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 지난 4월 28일 해양경찰이 공개한 세월호 사고 현장 동영상에서 선장 이준석씨가 탑승객을 두고 속옷차림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_연합뉴스
故 김기웅·정현선씨 우리 결혼은 하늘에서…
침몰의 순간 한명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배안으로 뛰어 들어간 ‘살신성인 커플’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와 승무원 정현선씨는 올가을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였다.

김씨와 정씨는 각각 4월 19일과 20일 인천 길병원과 인하대병원에서 장례를 마치고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 함께 안치됐다.

인천대 학생인 김씨는 군제대 후 학비를 벌겠다며 4년 전부터 선상에서 불꽃놀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승무원인 정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친구들과 인천 용유도에 놀러갔고 최근에는 용인의 놀이동산에 다녀오는 등 풋풋한 사랑을 키워왔다. 이들은 김씨 대학 졸업에 맞춰 올가을께 결혼할 예정이었다. 유가족들은 49제에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김씨와 정씨는 사고 당시 누구보다 앞장서 승객들을 구하다 함께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층 로비에 있던 김씨는 사고를 인지하고 동료 3명을 깨워 나오던 중 정씨가 없는 것을 알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힘겹게 만난 김씨와 정씨는 바로 탈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해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한 탑승객은 “정씨와 김씨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이런 참변을 당해 매우 비통하다”며 “이들은 탑승객들 탈출시키기 위해 소리치며 떠밀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씨는 평소 ‘정 장군’이라 불릴 만큼 남자 직원 못지않은 능력과 책임감을 보였으며, 어린이와 노약자를 배려하는 태도로 많은 승객과 직원들이 따랐다.

김씨도 활달한 성격으로 졸업학기임에도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평소보다 아르바이트에 매진했으며, 사고 당시에도 여자친구인 정씨와 시간을 보내려고 일부러 세월호에 탑승했다.

정씨의 언니는 “배가 집이나 다름없어 유품이 모두 물에 잠겨 기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탈출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4월 17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전남 진도 해상 침몰 여객선에서 실종된 친구들을 위해 단원고를 비롯 안산지역 고등학교 선·후배들이 각각 응원하는 글을 들고 침묵으로 친구들이 돌아오길 기원하고 있다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故 정차웅군 구명조끼 벗어 친구에게…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하늘나라에선 못다한 꿈 이루기를
덩치카 커서 ‘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안산 단원고의 정군은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넸다.

곧바로 다른 친구를 구하러 나섰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같은 반 학생 김모군(17)은 “차웅이는 원래 친구들 말도 굉장히 잘 들어주고 평소에도 친구를 위해 양보를 잘하던 친구였다”며 “보지는 못했지만, 차웅이는 구명조끼를 벗어주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정군은 평소에도 심성이 곱고 양보를 잘하는 친구로 알려졌다. 활달한 성격에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던 모범생이었다.

특히 검도 3단 유단자로 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꿈을 가졌었다. 이제 그 꿈은 이룰 수 없게 됐지만,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 던지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남겼다.

정군의 친구 나정훈군(17)은 “차웅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4월 22일 먼 길을 떠나기 전, 정군은 봄햇살이 따사로운 학교 운동장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돌았다. 이후 정군은 같은 반 친구 2명과 함께 20분 간격을 두고 연화장으로 향했고, 마지막까지 같은 추모공원에 나란히 자리했다.

故 최덕하군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오전 8시 52분 최초로 119에 신고 174명 구조 길튼뒤 싸늘한 주검으로
안산 단원고의 최군은 16일 오전 8시52분 119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고 신고했다.

2분 뒤 연결된 목포해경은 열일곱살 고등학생에게 경도와 위도, 선명과 선박 종류가 뭔지 따위를 캐물으며 시간을 허비했지만, 최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30여분 뒤 해경이 도착했다.

결국 이 신고는 174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이 중에는 탈출 지시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 살고자 했던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 15명이 포함됐다.
바로 최군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선을 타고서….

이에 반해 ‘자리를 지키라’는 선내 방송에 따랐을 최군은 물론 다른 친구들도 구조선을 탈 수 없었다. 아니 타지 못했다.

결국 최군은 지난 24일 새벽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4층 선미 객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가 발생한 지 8일만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뻔한 상황을 막았던 비보에 국민들은 또한번 오열했다.

최군의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트위터 등에 최군을 그리며 애달픈 글들을 올렸다.

활발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친구들로부터 ‘덕하최’라고 불렸던 최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4월 23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침몰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헌화 분향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故 남윤철 교사 제자들 가슴 속에 부활…
두려움 떨고 있는 학생에 든든한 교사 객실서 아이들 밀어내고 끝내 최후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 남윤철 교사는 기우는 선실 비상구에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줬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 대피시켰다.

그는 가까스로 갑판까지 올라왔다가 아래층 객실로 다시 내려갔다. 안내 방송대로 객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물이 머리에 차오를 때까지 밀어냈다. 그는 이튿날 세월호 주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 교사의 장례미사에서 그의 아버지는 “사랑한다. 내 아들아, 잘 가라, 장하고 훌륭한 내 자식”이라고 오열했고 장례식장은 일순간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전원 구조라고 해서 병원에 있으면 데려오려고 내려갔다”며 “중간에 상황이 바뀌어 학생들 30명 정도가 객실에 남아 있어 구해야 된다고 했을 때 윤철이가 그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눈물을 삼켰다.

또 아버지는 “지식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스승으로 남으라고 했는데 그들을 살리다 결국 그렇게 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남 교사의 부친이 치과의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세영 협회장과 회원들이 2억 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이와 함께 남 교사의 6반 제자 박호진군은 쓰러진 자판기에 끼여 있던 다섯 살 여자아이를 안고 나왔다. 90도 넘게 기운 세월호 난간을 붙들고 “아기요, 여기 아기 있어요” 외쳤다. 박군은 아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를 벗어났다. 열일곱 살 소년은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셔서, 부모 찾으며 우는 아이를 두고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故 최혜정 교사 걱정말고 너희들 먼저…
기울어져 가는 배안에서 제자들 구출 위기속에 강했던 여린 새내기 선생님
올해 첫 부임한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교사 최씨는 사고 당시 SNS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전하며 10여 명의 학생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첫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것.

지난 19일 오전 안산 단원고 최혜정 교사의 발인이 엄수됐다. 이 자리에는 사랑했던 가족과 제자들 100여명이 눈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버지 최재규씨는 “똑똑하고 꿈 많던 아이였는데, 착하고 성실했던 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다”고 오열했다.

또 최씨의 대학 동기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선후배와 동기들이 모두 좋아하고…”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동국대에서 역사와 영어를 복수 전공한 그는 재학 중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 사범대를 수석졸업 한 뒤 지난해 3월 단원고 교사로 임용된 새내기 교사였던 최씨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제자들을 살리고 자신은 산화한 최씨의 모습에, 이 시대의 올바른 스승상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의 가슴에 아로새겼다.

글 _ 구재원·이명관·박용준·정자연·박광수 기자 kjw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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