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풍작... 과잉 생산에 새 시장 뚫어야 하지만 ‘막막’ 박람회·직판장 인맥으로 결정, 시대 뒤떨어진 컨설팅 개선해야
지연·혈연 막혀 설자리가 없다
“농사가 너무 잘 돼도 걱정이에요, 팔 데가 없거든요.”
가녀린 체구의 김자연 씨(29·가명)는 5년 전 친구의 권유로 경기남부권에서 장미 농사를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온라인 의류 쇼핑몰을 열어 ‘대박’을 터트렸던 친구가 “앞으로 치유농업이 뜬다는데 너도 이름 따라 농사를 해보는 게 어때?”라고 했던 게 계기다.
당시 취업도, 창업도 아닌 새로운 길을 찾고 있던 김 씨는 사업 감각이 있는 친구의 얘기에 솔깃했다. 기본적으로 장미를 어떻게 키우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1년간 적합한 환경을 찾아 여러 지자체를 방문하다가 결국 현재의 지역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장미 농사 지으려 ‘자연’으로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농업으로 대성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던 그는 “이젠 일이 힘드니까 ‘이 이름이 내 운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후회가 크다”고 전했다.
그 후회의 중심에는 ‘풍작’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농사가 지나치게 성공적이라 고민인 상황이다. 생산량은 많은데 판매처가 마땅치 않아 고스란히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저는 하우스 농사를 하기 때문에 날씨 영향은 덜 받고, 물 관리만 잘하면 비교적 재배가 잘 된다. 거금을 노리는 것도 아니라 보통 직장인 월급 수준만 벌자는 목표라서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어려운 상태는 아니다”라며 “문제는 코로나19였는데, 이전에는 졸업·입학 시즌 등에 매출이 컸지만 이후로 급감하면서 장미가 남아돌았다. 과잉 생산 돼 장미를 팔 데가 없으니까 전부 쓰레기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뚫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정부 부처에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귀농귀촌 관련 기관·단체에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돈을 주고 민간 컨설팅도 따로 받을 정도였다. 그러다 지역 내 귀농귀촌 교육관을 방문해 전문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별도로 전문가와 컨설팅 기회를 잡았다.
당시 컨설턴트는 김 씨에게 ‘온라인 스토어 입점’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때 김 씨는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 다른 지역의 농업인들과 공동 스토어 오픈을 준비 중이어서 다른 방법을 물었다고 했다.
자연 씨는 “컨설턴트가 두 번째로 추천한 건 지역 농업 박람회나 행사, 직판장 같은 곳에 부스를 꾸리는 것”이라며 “지자체와 마을 주민들, 청년농업인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보니 결국 그런 자리는 인맥으로 결정된다더라. 저 같은 초짜 농부가 설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제 컨설턴트는 ‘부스 마련해줄 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걸로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알 사람은 다 아는데 박람회에 들어가는 건 전부 지연·혈연 통해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허울뿐인 컨설팅의 이면에는 교육관의 잘못이 있다고 봤다. “교육을 열긴 열어야 하니까 지자체에서 꽂아주는 사람, 이장이 추천하는 사람 등을 강사로 앉힌다. 이런 컨설턴트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컨설팅을 해주거나 성의 없이 건성건성 응대해준다”며 “청년들이 농촌에 자리잡게 하려면 지역 교육관 컨설팅 같은 기초적인 일부터 내실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내 지자체 23곳 지원 전무... 뿌리 못 내리는 ‘귀농귀촌’
낚시할 배가 없는데 선박 수리 교육을 들어야 하고, 물려받을 땅이 없는데 양도소득세 감면 조건을 배워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청년 농부 지원책이 역(易)귀농을 부추기고 있다.
■ 道 귀농귀촌 혜택, 전국 1%뿐... 23곳 시·군 지원책도 없다
24일 귀농귀촌종합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에선 1천962개의 귀농귀촌 지원정책과 1천103개의 사회복지정책이 각각 추진되고 있다.
지원정책은 전남이 480개(24.4%)로 가장 많고 뒤이어 △전북 354개(18.0%) △강원 315개(16.0%) △경북 257개(13.0%) 등 순이다. 사회복지정책 역시 전남이 354개(32.0%)로 최다이며 △경남 175개(15.8%) △경북 136개(12.3%) △강원 128개(11.6%) 등이 뒤따른다.
이때 경기권 정책은 단 1% 수준에 그친다. 지원정책이 24개(1.2%), 사회복지정책이 9개(0.8%)에 불과하다. 추진 정책이 없는 서울시를 제외하면 제주(지원정책 16개(0.8%), 사회복지정책 5개(0.4%)) 다음으로 낮은 비중이다.
세부적으로 경기권 지원정책을 살펴보면 가평군의 사업이 ‘축산 및 가축방역분야 보조사업’, ‘귀농농업창업자금’ 등 8개(도내 33.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연천군이 ‘귀농인 농기계 임대료 감면 지원’, ‘주택개량 지원’ 등 6개(25%), 화성시·남양주시가 각각 3개(각 12.5%), 평택시·양주시·안성시·양평군이 각각 1개(각 4.1%)다. 대부분이 경기북부지역에 쏠린 정책이며, 여타 나머지 23개 시·군(도내 74.1%)은 귀농귀촌 관련 지원책이 없다.
특히 사회복지정책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정책이 존재하는 곳이 연천군과 양주시 두 곳 뿐이기 때문이다. 그마저 출산 또는 출산 예정 여성농업인의 검사 비용을 지원해준다거나 출산 관련 용품·철분제 등을 제공하는 내용으로, 대상이 특정돼 있다는 맹점이 있다.
이 같은 정책들은 대부분 기초 지자체 농업 관련 부서나 지역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
■ 광역 차원의 멘토도 사실상 ‘유명무실’
이 외에 경기도는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별도로 경기도농수산진흥원에 위탁해 ‘경기도귀농귀촌지원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도 센터에서는 크게 ‘정보 제공’, ‘교육 지원’, ‘정착 지원’이라는 3가지 틀 안에서 11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귀농귀촌박람회 참여(5회), 농협대(고양)·신한대(의정부)·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여주) 등과 연계한 귀농귀촌대학 운영 등으로, 투입 예산은 연 5억8천400만원이다.
하지만 일부 사업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게 청년 농부들의 생각이다.
예컨대 귀농귀촌대학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1인당 평균 70만원을 받는 꼴이지만, 수료 후 귀농귀촌을 하는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는다. 사후관리에 손을 떼서다.
또 실질적으로 경기도의 귀농귀촌 지원사업 중 ‘청년사업’으로 분류되는 사업은 △경기창업준비농장(모의 창농 기회 제공) △경기청년스마트팜(2022년 신규사업·스마트팜 시설비 지원)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정착지원금 및 융자 지원) 등 3개에 그치는데, 정부 정책과 차이가 없는 데다가 중복 지원도 불가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초보 농부와 전문 농부를 1:1로 연결해주는 ‘행복멘토·멘티’ 사업도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농사에 대한 기본 교육 외에도 신규 귀농귀촌인과 마을 원주민이 마찰을 일으켰을 때 ‘갈등조정관’을 파견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갈등조정관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주민의 텃세에서 시작된 감정 싸움은 때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갈등조정관이 파견되더라도 법적 권한이 없어 문제 해결에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 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센터에서 갈등조정관을 파견해 경기남부와 북부의 갈등 조정 사례를 조사한 결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았다”며 “이들을 화해시키거나 서로 묻어두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데다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 더욱 손 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전문적인 조정관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었지만 조정관이 실질적으로 갈등 해결에 도움 되지 않다 보니 해당 사업을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영농기술 교육·농업정보 등... 청년 농부 “우리는 참여 어려워”
기초나 광역이나 지자체 귀농귀촌 지원의 상당수는 ‘신규 농업인을 위한 기초 영농기술 교육 및 농업정보 제공’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외 지역 여건에 따라 ‘7천500만원 이하의 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화성시), ‘최장 3년간 월 최대 100만원의 영농정착 지원금 지급’(양주시), ‘이앙기·굴삭기 등 농업기계 임대’(가평군), ‘100만원 범위 내 단독주택 수리비 실비 지원’(연천군) 등 차이가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이처럼 다양한 정책들을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①경기도나 경기도귀농귀촌지원센터 외에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진흥청, 한국농어촌공사 등 정책 추진 기관이 제각각이라 ‘총괄 책임자’가 없는 점 ②사업 참여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사실상 승계농이나 강소농만 가능한 점 ③지역간 다른 평균 수온·기온 등 환경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천편일률적 교육이 이뤄지는 점 ④신규 귀농귀촌인이 진입하기엔 서류 준비 등 행정 단계가 어려운 점 ⑤지역간 정책 차이가 있어 같은 농업을 해도 혜택에 차등이 생기는 점 등이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화성지역의 한 농학박사는 “예컨대 ‘지자체가 주관하는 귀농영농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한 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사실상 정부가 선정하는 ‘청년창업농’에 한정하고 있는 꼴이라 그렇지 않은 ‘청년농업인’이나 ‘강소농’은 배제된다. 또 귀어(魚) 지원사업으로 추진되는 ‘소형 선박 수리 교육’ 역시 선박이 없는 이에겐 무용지물인 프로그램”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귀농귀촌 관련 정책이 큰 틀에서 비슷할 수는 있지만 조금 더 지역 밀착형이고 현 시대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K-ECO팀=이호준·이연우·한수진·이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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