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가치 높은 유산현장] 등록문화재로 보존해야 할 유산
[광복 70년, 가치 높은 유산현장] 등록문화재로 보존해야 할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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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돌아보는 이 없어도, 그 빛은 찬란하여라

등록문화재는 우리나라 근대 이후 제작ㆍ형성된 문화재 중에서 보존 및 활용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제도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건물 보수비 등 보조금이 지원되고, 관리를 위한 기술 지도도 받을 수 있어 건물 관리와 보존에 도움이 된다.

2015년 현재 경기도내에 등록문화재로 등재돼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은 총 66개다.

하지만 70~80년 이상의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2013년 경기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근대에 지어졌지만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건축물(의복, 서적 등 제외)은 모두 12개다.

■ 항미정(수원 권선구 서둔동)
이 건축물은 1831년 순조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정조 때 농업용 관개수원을 위해 축조한 축만제(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흙 등으로 막아 쌓은 둑) 서쪽 서호 인근에 위치해 있다.

서호의 경관과 풍치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명물로 명칭은 석양에 비치는 그림자가 마치 미인의 눈썹과 같다는 데서 유래됐다. 현재 수원시의 향토문화유적 1호로 지정돼 있다.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지(수원 팔달구 남창동)
이 건물은 1937년에 지어진 전통 한옥이다.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이 건물은 지난 1961년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고전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국 영화 역사의 한 축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건물이다.

■ 용인 강석호 가옥(용인 기흥구 서천동)
환관 가운데 최고 지위인 상선(尙膳)에 올랐고, 아관파천 당시 고종황제를 업어서 모셨다고 알려진 강석호의 가옥이다.

그는 헤이그밀사 파견시에 고종황제와 헤이그밀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고, 용인에 거주하면서 지역 내 학교에 많은 재산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그의 가옥은 일부 변형되긴 했지만 지역에서 보기 드문 조선말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높다.

■ 평택 옹포 공출창고(평택 청북면 삼계리)
1938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일제 말 경기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지어졌다.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외부에서는 2층 구조로 보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된 독특한 구조다. 특히 당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문화자산으로 가치가 높다.

신지원기자

[인터뷰]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무조건적 보존 아닌 ‘근대 건축물 가치평가’ 먼저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치에 대한 연구가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나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리와 보존을 경계했다.

해방 이후 근ㆍ현대 연구가 주로 독립운동이나 관련된 유적지와 사적지로만 집중됐고, 일제강점기나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은 일제 잔재 청산 논리가 앞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와 논의를 통한 역사적 가치 평가가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1990년대 들어 민주화가 이뤄지고, 소련 등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좌우 투쟁이나 대립, 민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우리의 근ㆍ현대사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는 치욕의 역사인 일제강점기를 겪은 근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잔재를 청산해야 된다는 논리가 우세했습니다. 일제침탈의 상징성이 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도 했으니까요.”

또 박 교수는 전통시대의 것만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근ㆍ현대사는 동시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보존보다는 개발 논리를 앞세운 게 그동안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등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음을 인정하고, 비판에 앞서 우리가 그동안 어떤 흐름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근대 건축물이나 그 당시 것들을 보존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하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에요. 그 전에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서도 하지 않았던 고민입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일제강점기와 근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문화의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어요. 연구자들도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요. 이제는 근대 건축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의가 이뤄져야 해요.”

연구 이후 보존 방식에 대해서는 ‘일상생활에 녹아든 유적지’를 제안했다. 예전처럼 멀찍이 놓고 바라만 보는 방식이 아니라 곁에 놓고 모두가 함께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유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와 논의하는 과정이나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 대립은 당연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립되는 지점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합의로 나아가야 올바른 문화유산 보존이 이뤄질 겁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합의ㆍ공유하면서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신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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