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잔혹한 탄압에도… 도내 곳곳 울려퍼진 ‘숭고한 외침’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도… 도내 곳곳 울려퍼진 ‘숭고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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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치열했던 독립운동 현장
▲ 제7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12일 안성시 원곡면 안성3•1운동기념관을 찾은 안성 아름다운 어린이집 예쁜 아이반 35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그날의 기쁨을 재연하고 있다. 전형민기자

서울에서 시작된 조국 해방을 위한 항일 운동은 경기도 곳곳에서도 펼쳐졌다.

학생부터 기생까지 모든 시민이 나서 일제에 저항했던 수원, 목숨까지 내던지며 일제와 맞서 싸운 평택, 대규모 인원으로 밀어붙인 파주, 일제 순사들의 눈을 피해 기습 항일 운동을 전개한 남양주, 횃불에 배까지 동원해 저항한 고양 등 독립에 대한 도민의 의지는 강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본보는 경기도내 각지에서 대규모로 펼쳐졌던 항일독립운동을 살펴보고, 점차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는 항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수원, 학생들이 불 붙인 독립운동 기생까지 동참
서울에서 만세 운동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3월 3일.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 36명은 서울의 항일 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밤에 몰래 기숙사를 빠져 나가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16일 지역에서 본격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팔달산 서장대와 연무대에서 인근 주민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이 소방대와 헌병을 등을 동원해 만세운동을 저지하려 했지만 시민들은 일본의 강한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다.
 

▲ 수원 서장대 3•1 독립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

불붙은 항일운동은 같은 달 25일 수원시장(현재의 남문•영동•지동 시장 일대)으로 옮겨갔다. 지역 청년들이 앞장서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면서 운동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주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청년들이 체포되는 모습을 지켜본 상인들은 문을 닫고 철시시위에 돌입했다. 비록 일제의 강한 압박에 시위는 점차 사그러들었지만 주민들의 항일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다음은 수원 기생들의 차례였다. 29일 수원기생조합 소속 기생 30여명은 자혜의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던 중 수원 경찰서 앞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을 펼쳤고, 자혜의원 앞으로 이동해서도 한 차례 만세를 외치며 조국의 해방을 염원했다.

현재 팔달산 서장대에 ‘3·1 독립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평택, 수백명 주민들 목숨까지 내던지며 항일 의지
평택 시민들의 항일 의지도 다른 지역 못지않았다. 3월 9일 현덕면 권관리 계두봉에서 첫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너도나도 만세를 부르며 항일 의지를 붙태웠다.

권관리 주민들이 나서자 옥년봉과 고등산, 대덕산 인근 주민들도 따라 나섰다. 다음날 희곡리 대덕산 정상에 모인 200여명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수탈에 저항했다.

11일에는 장날을 맞아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어나갔다. 일제의 강한 진압에도 평택 주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같은 달 21일 봉남리와 야막리 주민 500여 명은 북면사무소를 습격하기까지 했다. 강한 항일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만세운동은 4월에도 이어졌다. 1일 방문객을 가장한 주민 수십 명이 평택역 앞에 모여 다시 독립만세를 울부짖었고, 3일에는 서탄면 주민 400여명이 만세운동에 합류했다.

10일에는 금암리 주민 100여명이 회화리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면서 진압을 위한 일본 경찰의 발포에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평택 시민들의 독립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현재 진위면사무소인 옛 북면사무소 터 앞에 있는 기념비로 당시 평택 시민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파주, 3천명이 외친 독립만세… 광복 향한 뜨거운 열망
경기 북부 지역인 파주에서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3월 10일 교하공립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100여명이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운동을 계획한 뒤 3월 28일 인근 주민 700여명을 모아 와석면사무소로 행진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다. 이 가운데 500여명은 죽음을 무릅쓰고 교하헌병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비록 헌병들의 발포에 해산되기는 했지만 파주 시민들의 광복에 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 파주 3•1운동 기념비.

같은 날 광탄면에서는 지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 벌어졌다. 앞서 수백 명 규모의 주민들이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을 외쳤고, 하루 뒤에는 2천여명이 일제 침탈에 대항했다.

인원이 모이자 이들은 면사무소 앞을 벗어나 장이 열리는 공릉장터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1천여명의 주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고, 광탄면 주민 2천여명이 합세하면서 항일운동 규모는 3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봉일천헌병주재소를 습격하면서 헌병들의 무차별 발포에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지만 파주 주민들의 항일 의지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현재는 조리읍 봉일천동에 있는 ‘3·1운동 기념비’를 통해 당시 파주 시민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남양주, 총칼로 무장한 헌병과 맞서 기습 항일운동
남양주에서의 최초 항일운동은 3월 13일이었다.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평내리 주민들은 지능적으로 움직였다.

일제 순사들의 강한 압박에 섣불리 모일 수 없게 되자, 일본 총독 하세가와가 만세 운동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말단 기관장에게 배부한 전단을 주민들과 공유하다는 구실로 사람들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00여명은 곧바로 기습 만세운동을 펼쳤다.
 

▲ 남양주 광릉천 만세운동시위지

다음 날에는 50여명이 더 추가된 150여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금곡리에 있는 면사무소로 행진했지만 아쉽게도 일본 헌병들의 제지로 만세운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15일에는 와부면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나섰다. 먼저 송촌리 주민 100여명이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덕소리로 행진하면서 만세를 외쳤고, 이 소리에 조안리 인근 주민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행렬이 덕소리에 도착했을 때 만세를 외친 이들은 5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총칼로 무장한 일본 헌병들과 맞서 싸우며 헌병주재소를 습격했지만 강한 무기를 앞세운 헌병의 압박에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항일운동은 18일에도 이어졌다. 화도면 월산리와 답내리 주민 200여명이 만세운동에 나선 것이다. 헌병의 진압과 체포에도 주민들은 굴하지 않았고, 참여 인원은 1시간 만에 1천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앞서 검거된 만세운동 참여자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헌병의 무자비한 사격에 해산됐다.

31일 부평리에서는 주민들이 광릉천 강가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모인 주민은 600여명에 달한다.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기 전까지 이들은 조국의 해방을 목놓아 외쳤다. 현재는 화도읍사무소 내에 있는 ‘순국선열추념비’만이 당시 민족의 해방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김포·고양, 횃불에 배까지 동원해 일제에 저항
김포에서는 경기도내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늦은 22일에 항일운동이 시작됐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만큼은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월곶면 주민 200여명은 면사무소, 향교 앞 등을 행진하며 만세 운동을 전개했고, 일주일 뒤인 29일에는 두배 늘어난 4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울부짖었다. 양촌면에서는 23일부터 5월까지 두 달여 동안 총 7차례에 걸쳐 주민 5천여명이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 김포 오라니장터 3•1운동 만세비. 독립기념관 제공

김포 바로 옆에 위치한 고양에서도 항일운동이 펼쳐졌다. 3월 11일 신도면, 벽제면, 지도면 일대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군중들이 만세를 외쳤고, 같은날 행주외리와 행주내리에서는 주민들이 만세 운동을 진행하다 경찰이 쫓아오자, 강에 배를 띄우고 선상에서 만세를 부르며 항일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만세 운동은 24일과 28일에도 이어졌다.

800여명이 만세를 외치며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었지만 일본 헌병의 거친 진압에 해산되고 말았다. 3월 26일에는 중면 주민들이 일산리의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산 장날인 26일에는 주민 500여명이 면사무소 앞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쳤다. 또한 28일 밤에는 주민 150여명이 횃불을 밝히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면서 항일 의지를 보여줬다.

지금은 김포 양촌면 양곡리에 있는 ‘오라니장터 3•1운동 만세비’와 월곶면 포내리에 위치한 ‘월곶 면민 만세운동 유적비’가 당시 김포 시민들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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