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압록강 너머 ‘낯선 북녘땅’
[ISSUE] 압록강 너머 ‘낯선 북녘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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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닿을 듯… 금단의 땅
▲ 중국 랴오닝성 단둥 압록강변에는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폐 철교가 있다. 분단과 냉전의 아픔과 비극을 상징하듯 압록강 철교는 드넓은 대륙으로 향하지 못한 채 단절돼 있다

70년이 흘렀지만, 아픔은 여전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았지만, 분단 현실에서는 반쪽 짜리 영광일 뿐이다. 광활한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교는 70년 가까이 반쪽으로 남아있다.

강점기 일제에 의해 만주로 이주한 한민족은 아직, 제 고향을 찾지 못한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와 하나 될 수 없는 민족의 슬픔이 우리 땅 곳곳, 우리 몸 곳곳에 새겨졌다.

광복 70주년을 찾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변. 이 곳에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 압록강과 함께 지금으로부터 65여년 전 6·25 전쟁 당시 끊어진 압록강철교가 당시의 아픔을 간직한 채 남아있었다.

이 압록강철교는 한반도의 신의주와 중국 단둥 지역을 연결하던 다리였다. 일장기를 품은 부끄러움에, 나라를 잃은 슬픔에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던 손기정 선수도 이 압록강철교를 지나는 열차를 타고 2주일만에 베를린에 도착해 올림픽에 출전했었다.

하지만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찾은 압록강철교는 지금은 끊어진 채로 전쟁의 잔흔으로 남아 같은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 분단의 아픔 그대로다.

압록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과의 거리는 고작 수백미터. 낯선 풍경과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들을 보며 분단된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강건너에는 조명도 켜지지 않은 채 멈춰있는 회전관람차, 곳곳마다 군인들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에서 여전히 경직돼있는 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무채색 위주의 건물들 사이로 ‘선군 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고 적혀 있는 새빨간 현수막은 더욱 강렬한 색채를 드러내고 있었다.

압록강 하류의 북녘 강변에서는 인부들이 중장비까지 동원해 항구를 정비하는 데 한창이었다. 예닐곱쯤 되는 인부들이 더운 날씨에도 굴삭기와 함께 항구의 배를 대는 부분의 시멘트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유람선에 탄 2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같이 할 수는 없지만 같은 핏줄이자 같은 민족인 사람들을 보고 자신들도 가슴에서 반가움이 우러난 데 따른 행동이었다.

압록강변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은 수십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러한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왔을까? 분단된 우리의 현실에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한국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이곳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손들이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을지 짐작이 갔다.

우리의 손짓에 북한의 한 인부로부터 화답이 왔다. 여러명의 북한 인부 중 한명의 인부가 팔을 수차례 휘돌리며 반가움을 나타낸 것이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북한 인부의 손짓 하나에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인부는 더이상 우리에게 가까이할 수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

압록강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지만 남이 아닌 우리라는 것을, 떨어져있지만 언젠가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외침을 두팔을 크게 휘저은 것으로 대신한 것은 아닐까. 민족이 하나돼 압록강철교가 이어지는 그날 이 곳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 정진욱기자 사진 = 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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