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이 소환한 1980년대 음악… 시청자 향수 자극
‘응팔’이 소환한 1980년대 음악… 시청자 향수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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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선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방송 시작과 함께 화제가 되자 1980년대를 추억하며 재조명하는 바람이 일고 있다. 

그중 음악이 주는 공감은 타임슬립 효과를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극 중 배경이 된 1988년은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노태우 정권으로 교체돼 6공화국이 출범한 시기다. 

‘88 서울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졌고, 정치권에서는 5공화국 청문회, 사회적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낳은 지강헌의 탈주 인질극, 방송가에서는 MBC 뉴스데스크의 ‘내 귀에 도청장치’ 소동 등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1980년대를 아우르면 대중음악사적인 의미는 한층 커진다. 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이전 권위주의 정권과의 충돌과 규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 TV스타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공존하는 등 양적, 질적 팽창을 이뤘다. 

그 시절, 우리의 귓가에서 배경음악(BGM)이 돼준 곡들을 살펴봤다. 1988년 1~12월 ‘가요 톱10’ 1위곡들을 돌아보고 1980년대 가요계를 재조명해 봤다.

■ 1988년 ‘가요 톱10’ 1위… 이선희·정수라·이상은 등
당시 영향력을 자랑한 가요 프로그램은 KBS ‘가요 톱10’(1981~1998)으로 5주 연속 1위를 하면 ‘골든컵’을 수여했다. 1988년 1월 첫째 주 주인공은 ‘사랑하기에’를 부른 이정석이었다. 1987년 12월부터 1위를 차지한 그는 1월 둘째 주까지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품에 안았다. 2~3월에 걸쳐서는 최성수의 ‘동행’이 강타했다.

이 곡은 2월 한 주 민해경의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에 자리를 내줬지만 5주 연속, 통산 6주 정상에 올랐다.

이후 바통은 3월 2주간 1위를 한 유열의 ‘이별이래’, 4월 한 주 1위를 한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번’으로 이어졌다. 조하문이 1주일 천하로 막을 내린 건 여운의 ‘홀로된 사랑’ 때문이었다.

이 곡은 4월부터 5월 첫째 주까지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지만 아쉽게도 이선희에 밀리며 골든컵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은 5월 둘째 주부터 6월 둘째 주까지 5주 연속 1위를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선희가 물러나자 전영록의 ‘저녁놀’이 6~8월에 걸쳐 통산 6주 정상을 휩쓸었다.

8월 둘째 주부터는 서울올림픽 붐과 맞물리며 정수라의 ‘환희’가 승기를 잡았다. 이 곡은 8월 한 주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10월 한 주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에 자리를 내줬지만 서울올림픽(9월 17~10월 2일) 이후인 10월 셋째 주까지 통산 8주 1위에 올랐다. 정수라의 기세를 꺾은 건 그해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이상은의 ‘담다디’였다.

꺽다리 여가수 이상은이 부른 ‘담다디’는 10월 넷째 주부터 11월 넷째 주까지 김종찬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에 한 주 정상을 내줬을 뿐 통산 4주 1위를 하며 춤과 함께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12월 한 달은 이치현과벗님들의 ‘집시여인’이 1위에 올라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곡은 1989년 1월 둘째 주까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의 영예를 안았다.

■ ‘응팔’ 삽입곡에 30여년 전 추억으로, ‘공감 백퍼’
1988년에는 이러한 곡들이 사랑받았지만 ‘응팔’에는 조용필, 이문세, 이선희, 변진섭, 소방차, 동물원, 유재하, 임병수 등 1980년대를 주름잡은 가수들의 노래가 대거 등장해 시대 감을 높이고 있다.

‘응팔’ 4화에서는 덕선이 선우에게 몰래 마음을 고백하고자 변진섭 1집 카세트테이프에 사탕을 붙여 독서실 책상에 놓아둔다. 1998년 출시된 1집 수록곡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의 가사를 개사해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탕뿐’이란 메모도 함께. 이 장면에선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경주로 수학여행 가는 쌍문여고 학생들이 조지 벤슨의 ‘낫싱스 고너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콩글리시’로 합창하는 모습도 ‘공감 백퍼’(100%)다.

“후렴에 (영어가) 들리는 부분만 떼창, 나도 저 노래 저렇게 따라불렀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또 이 드라마 테마곡인 이문세의 ‘소녀’(1985)를 비롯해 유재하의 ‘우리들의 사랑’(1987),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2),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1987) 등이 장면 곳곳에 깨알같이 파고들었다.

이 시기 학창 시절을 보낸 지금의 40대들이 무릎을 칠 대목들이다. 방송이 나가자 온라인에서는 삽입곡과 그 가수에 대한 향수 어린 추억담이 쏟아졌다. 소방차 출신 정원관은 통화에서 “‘응팔’ 배우들이 ‘어젯밤 이야기’ 안무를 열심히 연습한 것 같더라”며 “30년 된 우리 음악이 다시 들리니 반갑고 추억이 새록하더라. 1980년대 음악이 다시 활성화될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 1980년대, 장르 다양하고 주류와 언더 공존한 호황기
1970년대 청년 중심의 팝·포크와 중장년 중심의 트로트로 양분됐던 가요계는 발라드, 댄스, 록, 트로트 등 다채로운 장르로 확장됐다. 1981년부터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덕에 TV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지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높은 앨범 판매량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이 시대 가요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조용필의 독주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도 이문세의 3·4집이 판매량 100만장·200만장을 훌쩍 넘기며 변진섭을 거쳐 1990년대 신승훈으로 이어지는 팝 발라드 계보를 구축했고, 소방차·박남정·김완선 등 댄스 가수들은 일가(一家)를 이뤘다.

송골매·다섯손가락·벗님들 등 1970년대 캠퍼스 뮤지션 출신 그룹들이 1980년대 르네상스 인프라 구축에 일조했으며, 시나위·백두산·부활 등 헤비메탈·록밴드들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의 아이돌처럼 사랑받았다.

노래패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사계’가 민중가요이면서 차트 1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TV에 치중하는 가수가 아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다운타운과 공연장에서 사랑받으며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는 “당시 언더그라운드 가수 중에서도 밀리언셀러가 다수였다”며 “동아기획이란 레이블이 등장하며 소극장 문화가 활성화됐는데 지상파 방송에 나가지 않아도 음반 판매와 공연만으로 인지도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던 시대다. 이처럼 1980년대 가요계는 암흑기를 딛고 풍성한 장르가 공존하며 팽창한 호황기였다”고 설명했다.

신인의 등용문이 된 건 MBC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등으로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이선희(1984)와 이상은(1988)은 각각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신해철이 보컬인 무한궤도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스타 탄생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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