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옥탑방'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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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야! 제발 씨만은 받지 말거라….”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니가 다 이러진 않는다. 그렇지만 임신을 걱정해 말도 안되는 이런 신신당부를 마지못해 해야하는 어머니들이 더러 있는 게 현실이다. 말려도 소용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계약동거만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해도 그렇다. 살아보고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을 올려도 그렇다.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한다. 이즈음 일부의 젊은이들 풍조가 이렇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물론 극히 적은 수의 젊은이들 생각이긴 하다. 그래도 몹쓸 유행병의 영향은 마치 아편과 같아서 심각하다.
여기에 M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싱글즈’ 같은 게 바람을 부추겨 동거 관련 사이트가 후끈 달아 올랐다. 대학가 주변에서 방을 내놔도 ‘옥탑방 있음’하고 써붙여야 쉽게 나가는 지경이 됐다. 시청률 경쟁의 드라마 병폐, 흥미성 지상의 색영화 폐악은 이미 유죄 평결이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면서 사회공익을 내세우고,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스크린 쿼터 사수를 주장한다.
외국영화를 본다. 좋은 조건에서의 좋은 감정은 사랑의 실체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조건에서 확인된다. 지디 감독의 미국 영화 ‘두 연인’은 에로틱한 침실 장면은 하나도 안보이면서 잘 나가는 첨단 직업인의 남녀 주인공이 자유분방을 구가한다. 마침내 두 남녀는 대화재로 크게 부상당한 고통 속에서 서로가 느끼는 가슴 치미는 그리움이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브라우데 감독 ‘네프 므와’(Neuf Mois)는 프랑스어로 9개월이란 뜻이다. ‘사랑’이란 말은 유치한 단어로 아는 두 남녀의 독신주의자가 편의적 동거를 하다가 실수로 임신하고 만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법으로 낙태를 금하는 임신 71일을 또 넘기고 말았다. 남자는 도망칠 궁리에 골똘했으나 여자는 전에 없던 행복감을 맛 본다. 그러다가 남자는 어느 날 여자가 임신복을 갈아입는 맨 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산달이 가까워 커다라진 배, 그것은 신의 계시와 같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잉태시킨 새 생명에 대한 희열과 책임감이 온 몸에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분만실에서 남자는 산모 곁을 지킨다. 난산의 우여곡절 끝에 절대절명의 순간을 넘어 마침내 터져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라고 싱글벙글하며 아이 어머닐 껴안는다.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심리변화를 묘사한 ‘네프 므와’는 결코 영화속 얘기만이 아니다. 더 살아보고 결혼식 올리고, 더 살아보고 혼인신고 한다며, 아무리 더 살아도 그냥 살아서는 상대를 다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단 맛만 즐기는 사랑보다는 쓴 맛을 이기는 사랑이 사랑의 지혜다. 그래서 계약동거는 인생의 위험부담이 더욱 높다. 자유로운 혼외 동거관계를 나중에 결혼해서 생각해 본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과거 동거 사실을 상대가 이해해 주고, 상대의 과거 동거 사실을 자신이 이해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불행의 씨앗이다. 뉴엘 감독의 영국영화 ‘네번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신랑은 결혼식장에 나타난 과거의 여자를 보게 되자 “어떠한 경우라도 신부만을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의 결혼서약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된다.
적어도 결혼은 연습이 아니다. 까먹는 사랑은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일구는 사랑은 언제나 샘 솟는다. 결혼은 서로가 상대를 완전히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불완전하게 알고 출발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맞지 않은 새로운 발견은 세파를 헤쳐가다 보면 조화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옥탑방’ 엘레지, 그러니까 대학생 딸 어머니가 겪는 엉뚱한 걱정은 여학생의 잘못도 있겠지만, 보다 남학생들이 치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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