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밥상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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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상은 밥상이라고 한다. 밥상을 받는 사람에게 왜 상을 받느냐고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밥상은 사람만이 받는 것이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과 찌개, 적당히 간이 맞는 반찬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하고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게 한다. 밥상을 받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면서 식구(食口)들은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 그 식구 중의 하나가 시인이라면 ‘질투는 나의 힘’ 운운하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런데 밥상을 받을 때와는 달리, 상을 받으면서 스스로 찜찜해지거나 구설수에 오르거나 심지어 비난에 직면해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명분 없는 상을 받을 때다.

폭염으로 전국이 절절 끓던 지난 여름, 한국문인협회(문협)에서 ‘육당문학상’, ‘춘원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해서 논란이 뜨거웠다. 친일행위는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작품은 독립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일제의 요구에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최선을 다한 인물들인데 굳이 문학상까지 제정해야 하는가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문효치 문협이사장은 두 사람의 친일행위는 분명 비판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할 일이지만 작품은 독립된 생명체라 발표한 뒤에는 독자의 것이 된다며 작품까지 평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 두 사람을 빼놓고 한국문학사를 이야기할 수 없고 그들의 작품은 작품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작품을 평가하는 것과 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친일 청산 문제는 아직까지도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들끓는 여론에 밀려 문협에서 상 제정을 철회해서 결국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번 일로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작가와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해묵은 문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당 서정주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한국어의 부족장이라 불릴 만큼 언어의 연금술사며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작품의 성과에 비해 그의 행적이 지나치게 낯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일제시대의 친일도 모자라 권력에 대해 그는 평생 해바라기형 삶으로 일관했다. 특히 5·16 군사쿠데타 예찬과 전두환 찬양시 등을 써서 후배 시인들을 실망시켰다.

어느 사회에서 시인이라고 불릴 때 그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막중해진다. 더구나 상까지 제정해 기릴 정도면 문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그의 역사관과 세계관 역시 평범한 사람들보다 넓고 깊으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미당에 대해 한국의 시인들이 애증을 갖게 된 연유도 그만큼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인데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처신을 했기 때문이다.

미당의 문학적 성취와는 별도로 미당문학상이 갖고 있는 딜레마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가을이 되자 여기저기서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시상식에 가서 마음껏 축하도 하고 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밥상을 받아 뜨거운 밥에 김치를 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난 것이다. 상은 역시 밥상이 최고며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라고. 그나저나 요즘 고민 중인 시 한편이 왜 이리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고.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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