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재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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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에 개봉한 ‘설리:허드슨강의 기억’은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2009년 탑승객 전원이 생존한 비행기 사고를 그린 실화다.

이륙하자마자 새떼와 부딪치는 바람에 엔진이 다 망가진 비행기에서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기장. 그는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맨 끝자리까지 확인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탈출을 한다.

그런데 영화는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기장의 영웅적인 행위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조사위원회는 부근 비행장으로 회항하지 않고 강 위에 착륙한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를 묻는다. 공항으로 갔더라도 충분히 착륙할 수 있었는데 무모한 모험심, 혹은 경박한 영웅심 때문에 강물 위에 불시착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냉정하게 묻는 조사위원회 앞에서 기장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끝없이 자문한다.

어쩌면 빤할 수도 있는 영화의 내용에 긴장감을 불러넣는 것이 이 지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후의 조사와 시뮬레이션 실황 등이 펼쳐지고 직감에 의존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허드슨 강 위에 떠 있는 비행기와 탈출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우연히 강 주변에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몰려와 전원을 구조해내는 배들의 모습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구조 작전은 24분만에 끝났다.

영화에서 설리 기장은 비행기가 빌딩과 충돌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미국인들이 지금도 9·11테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인들은 그 재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수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4·16세월호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규명이 필요하다. 도대체 배 하나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는 걸까?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이 22일 거창군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해경은 배가 기울었는데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해냈고, 선내 진입은 물론 밖에서 퇴선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선장은 구조 당일 경찰의 집에서 잤으며, 세월호는 운항정보 등을 국정원에 보고했지만,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는 그러지 않았다. 철근 400톤이 실려 있다는 사실, 국책은행이 돈을 더 빌려준 사실, 청와대가 적절한 지시를 했는지 등 많은 의혹이 남아 있고, 그런 것들을 점검해야 한다”(거창공보뉴스 2016년 10월 22일자)라고 밝힌 것처럼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온통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세월호라는 말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너 불순세력이지?’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근에 문화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들쑤셔놓은 블랙리스트만 해도 그렇다. 이른바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을 한 작가와 예술인들을 문화예술위원회 심사위원이나 예술지원금 명단에서 제외시켰다는 것인데 대규모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 규명을 하자는데 왜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사회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편, 네편 가린다면 끝없는 반목과 갈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은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며 오랜 기간 힘겹게 쌓아 올린 자산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문화계에 대한 원칙이 그립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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