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박찬일의 ‘마주치지 않는 눈빛에 대하여’
[시 읽어주는 남자] 박찬일의 ‘마주치지 않는 눈빛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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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비춰질 나, 그 존재론적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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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유혹이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에 눈길을 주는 일도,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야릇해지는 일도 모두 유혹이다. 산다는 것은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나’와 ‘너’의 아름다운 소란이고 요동이다.

국어사전은 이런 유혹에 대해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이라든지 “성적인 목적을 갖고 이성(異性)을 꾐”이라고 정의한다. 참으로 물기 없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반쪽의 설명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감각의 생동감을 마른 북어처럼 건조하고 흉측하게 만드는 국어사전의 일방적 강요(?)에 맞서 반항의 삿대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들이다. 

국어사전적인 혹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속박에 대해 마냥 삐뚤어지고 싶은 무구(無垢)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곧 시심(詩心)이다. 유혹은 때 묻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때가 묻어 있다면 그것은 사기다. 유혹은 생명이고,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어떤 아름다움들의 반쪽이다.

박찬일 시인의 〈마주치지 않는 눈빛에 대하여〉는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수다도 없고, 미사(美辭)도 없다. 얼핏, 이게 끝인가라는 허전함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면 뭔가 야릇한 마음이 생긴다. 야릇함을 넘어 에로틱한 정념들이 아련히 꿈틀댄다. 그의 시에 나도 속절없이 유혹당한 것이다. 유혹은 조용할수록 치명적이다. 

‘뒤’에 앉아 있는 여자와 ‘앞’에 앉아 있는 ‘나’ 사이를 흐르는 것은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은 내가 볼 수 없는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건에 의해 사정없이 팽팽해진다.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그 여자, 그것은 신비함이다. 또한 그 신비함 속에는 모종의 두려움도 섞여있다. 

두려움이 없는 신비는 가볍다. “아마 나를 보고 있을 것이네”라는 시인의 읊조림은 타자에게 비칠 나의 모습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담겨있는 존재론적인 떨림의 표현이다. 그 아득한 떨림을 시인은 비밀스런 ‘호흡’으로 몰래 내쉰다. 보이지 않는 것 혹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떨림과 두려움의 마음을 갖는 것은 곧 삶을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에는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 인간관계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혜안이 담겨있다. 아니, 혜안이라기보다는 화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유혹’이다. 나를 보고 있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화답으로서의 ‘유혹함과 유혹 당함’의 세계. 그곳에 삶의 애틋함이 있다. 두려움과 떨림, 신비와 아름다움의 사이를 흘러가는 유혹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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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섹시한 철학자(라고 내가 믿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유혹은 언제나 섹스보다 더 야릇하고 숭고하다. 그리고 우리가 최고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유혹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최고의 가치’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유혹이 없는 세상은 참혹하다. 너의 아름다움이 나를 유혹하고, 나의 아름다움이 너를 유혹하는 사랑의 시간이 마냥 그리운 시절이다. 

글_신종호 시인

시인 신종호
196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국어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사람의 바다』,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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