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사월, 그리고 섬의 잔혹사
[문화카페] 사월, 그리고 섬의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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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벚꽃, 산수유, 조팝꽃들이 서로 다투어 급히 피어나고 한꺼번에 하르르 지고 있다. 자연도 사람들처럼 조급증이 드는 걸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종일 뿌연 대기 속에서 퇴색된 그림처럼 꽃들은 그렇게 왔다가 사라져 간다.

사월은 일년 중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한 일이 일어났던 달이기도 하다. 4ㆍ3이 일어난 지 올해로 70년. 제주도민들은 친척이나 이웃들 중에 희생자가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4ㆍ16 세월호가 있다.

올해로 4주년.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 당시 국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느라 애썼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산 교훈을 주었던 세월호는 사고가 어떻게 사건이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4ㆍ19혁명 당시 희생된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내게 사월은 내내 추모의 시간이다. 봄이 오기 전에 먼저 몸이 아픈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한 아름다운 사월의 섬을 생각해본다. 섬의 사월엔 온갖 야생화들이 기지개를 켠다. 노랗거나 붉은 꽃들의 물결, 따뜻한 햇살과 푸른 바다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섬의 달력은 일반 달력들과 다르다. 거기에는 달의 나라가 펼쳐져 있고 밀물과 썰물, 물의 고저에 따른 일년이 담겨 있다. 물로 세상을 읽는 물의 가족이다. 물이 조금밖에 들지 않는 조금 때에 아이들은 생겨나고 어느 풍랑에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해,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들이 생겨난다.

어부들의 달력을 본 곳이 어디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선감도 경로당에서다. 선감도는 대부도와 인접한 섬으로 대부도처럼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포도밭을 따라 경기창작센터에 거의 다다를 즈음, 언덕받이에 ‘선감학원 위령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원두막과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은 묘지였고 놀랍게도 아이들이 수백 명 묻혀 있다고 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본인들이 소년들의 감화시설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학대를 행하던 곳이다. 500여 명의 부랑아들이 ‘어린이 근로정신봉사대’로 불리며 전쟁군수물자 제작에 동원됐다. 광복 이후로도 300여 명의 소년들이 잡혀와 바다를 메워 염전을 만드는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등 1982년까지 존속됐다.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린이 강제노동수용소였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사실이 선감학원 부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2017년이 돼서야 경기도에서 피해자 지원 사전조사를 연구용역 주고 위령제를 개최했지만 선감학원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그 오랜 시간 존속됐다는 것이 가장 놀라울 뿐이다. 검거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들의 무자비한 행태로 부모가 있는 아이들까지도 마구잡이로 잡혀갔다. 굶주림과 노역과 병으로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고 탈출하다가 조류에 휩쓸려죽기도 했다. 정확히 몇 명이나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생존자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눈물 없이는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유례 없는 아동인권유린의 현장이다.

“선감도 소년들이시여 / 어머니 기다리시는 집으로 밀물치듯 어희 돌아들 가소서 / 이 비루한 역사를 용서하소서” (홍일선, <한 역사> 부분)

끝내 귀향할 수 없었던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그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 두려움을. 사월의 꽃들에 대해, 아름다운 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결국 역사의 비극 속에 채 피지도 못한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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