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풍물시장을 다녀와서
[문화카페] 풍물시장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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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단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나면 공연 때마다 표를 팔아야 하는 일이나 공연 제작을 위한 제작비 마련과 홍보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거로 생각했는데, 안무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예술가 남편을 둔 덕분에 아직도 공연 티켓 판매 관리는 물론 작품에 필요한 장신구 때문에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주말, 시립무용단 단원들을 위해 남편이 안무한 신작 ‘카르멘’ 작품에 필요한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청계천 풍물시장을 다녀왔다. 이번에 의상을 담당하시는 디자이너가 무용 의상을 처음 디자인·제작하시는 분이라 장신구까지는 신경 쓰실 시간이 안 되신다며 안무를 한 남편이 직접 캐스팅 성격에 맞는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하루 시간을 내어 풍물시장에 가게 됐다.

이곳은 20여 년 전, 서울발레시어터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현존’ 2막에 필요한 청바지와 티셔츠 구매를 위해 남편이 즐겨찾던 곳으로 그 뒤에도 창작작품에 필요한 단원들 의상을 이곳에 와서 많이 구매하여 수선하거나 장식을 달아 무대의상으로 사용하며 자주 찾던 장소다.

몇 년 동안은 이곳에 올 일도 별로 없고 거의 잊고 살아왔는데 지난해 6월 정년퇴직을 한 친정오빠가 소일거리라도 찾아보고 싶다며 이곳 풍물시장 안에 작은 가게를 세내어 장사를 시작했다. 오빠 가게도 구경할 겸 장신구 구매도 할 겸 남편을 따라 시장 나들이를 하게 됐다.

발레단을 21년간 운영하면서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처럼 보일지 몰라도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철저하게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절약하고 꼭 필요한 비용은 아끼지 말고 멋지게 쓰자는 마음으로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꼈다.

의상은 기본만 의상실에 주문을 넣어 만들고 보석이나 꽃을 달아 장식을 해야 하는 수작업은 거의 발레단 사무실이나 집에서 만들었다. 귀걸이, 머리 장식도 직접 만들어 공연 장신구로 사용하다보니 어느 시장 어디에 가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천을 사서 어디에 가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는지도 훤히 알게 됐다.

뭔가를 잘 만들고 척척 조립하는 저의 손재주 역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저에게 처음 무용을 가르쳐 주신 윤희준 선생님의 제자 사랑과 절약 정신 덕분이었다. 저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잘 알고 계신 선생님께서 의상비 부담을 줄여 주시고자 부채춤, 화관무, 장구춤 의상의 화려한 스팡크 장식을 저와 함께 달아주신 게 그 시작이었다. 기본 의상 판만 저렴하게 만들어와 밤새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가르쳐주시며 함께 꿰매주시곤 하셨는데 그 당시엔 몰랐던 선생님의 사랑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크고 값지게 느껴진다.

가게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되는데 오빠 가게 주변의 모든 상인은 너무도 친절하고 사랑과 정이 넘쳐났다. 스카프 1장이 천원이라고 해서 2장을 골라 2천 원을 내니 1천 원을 거슬러 준다. 버리려고 한 거니 그냥 가져가라고도 한다. 저렇게 다 집어주고 나면 언제 돈을 벌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물건을 함부로 버리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가지도 않는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많은 생각과 반성을 했다.

날씨도 너무 좋고 오랜만에 사람 사는 모습을 본 것 같아 모처럼 힐링도 되고 재충전도 되어 감사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크고 작은 불평을 하며 지낸 저 자신이 부끄러웠다.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 안의 모든 사람은 500원, 1천 원을 너무도 귀하고 값지게 잘 쓰고 있었고 돈의 가치는 얼마를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는 인심 좋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풍물시장에 한 번 다녀오시는 건 어떨까.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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