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월드컵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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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찾아서 볼 생각도 없었다. 공중파 방송국이 일제히 같은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싫어 굳이 다른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속보로 그리고 뉴스시간에, 경기 결과는 알게 되고 과정이 궁금해지면서 인터넷으로 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대학의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학생들을 인솔해서 답사 차 대만으로 왔다. 하필 그날 밤에 월드컵 경기가 있었고, 호텔에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봤지만 이곳에서는 자국의 경기가 없는 월드컵 중계를 애당초 하지 않았고, 스포츠 채널에서도 늦은 시간 짧게 결과만을 전할 뿐이다. 한국의 포털을 찾아봤지만 동영상은 저작권자의 요청으로 국내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자로 중계되는 경기는 누가 골을 넣었다는 것은 알려주지만 어떻게는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대한민국-멕시코 전은 생각보다 점수 차가 나지 않았다. 아까운 결과라고 하지만, 실력이 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팀 중에서 가장 열세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던가. 물론 항상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따르지 않은 결과는 스포츠가 아니지 않은가. 충분히 잘 했구나 생각했는데 다음날 살펴본 경기 기사는, 그리고 경기를 직접 지켜본 마음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한 선수의 실책은 급기야 국가대표 퇴출을 바라는 청원까지 등장하고, 한 경기 두 경기 지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외국 도박 사이트의 승률을 언급하는가 하면, 잘 접하지 못한 외국의 매체를 인용하며 온갖 추측을 쏟아낸다.

이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오직 하나, 경기에 이기는 것이다. 유럽파 선수의 뒤늦은 한 골은 모든 결과에 상관없이 낙관적인 예측을 쏟아내게 했다. 지난 대회 우승국과 경기를 남겨놓고 조금씩 낙관적인 이야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승리의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이기는 경기일까?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경기는 1982년의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다. 당시의 감독은 스파르타 식 훈련으로 청소년 대표팀을 세계 4강에 올려놓는다. 과정이 혹독했더라도 결과가 좋으니 모든 것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같은 과정이 몇 번 반복되었지만 이전과 같은 성과는 얻지 못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모셔온 다른 나라 출신의 감독은 기적처럼 세계 4강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또 그 과정이 반복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랐지만, 결국은 응하지 않았다. 신화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당시 중계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같이 답사 온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풀어내었더니 현지에서 만난 중국 분은 한국이 부럽다고만 한다. 아직 한 경기도 못 이겼다 하니, 한국은 매번 월드컵 본선을 나간다고, 중국은 2002년 한번뿐이었다 한다. 월드컵 본선에서 자기 나라의 경기를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한다. 눈높이가 달라져 있는 거다.

승패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가장 당사자이니, 그들보다 더 기쁘고, 더 아쉬울 사람이 있을까? 경기 자체로 즐기자고 한다. 물론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이기면 좋고 지면 아쉽다. 이웃나라와 비교해서 좀 더 느긋하게 봐도 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좀 더 자세히 보면서 과정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있다면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뭐 그 경지가 되려면 자주 보면 될 텐데,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경기라도 직접 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 축구를 좋아하는 후배는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전국의 경기장을 찾아다닌다. 경기가 있는 날은 다른 약속을 아예 잡지도 않는다. 외국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인터넷으로 경기를 찾아보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친구에게 중계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야겠다.

이제 일단 결과는 나왔고, 승패에 기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경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계속 마음 졸이며 경기를 봐야 하는 날이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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