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인생이 다 시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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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은 ‘시의 집’으로 시인들은 자신의 시집을 가져야 진짜 시인이 된다. 시집은 시인이 찾아낸 언어의 집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하이데거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시인의 전존재가 스며 있는 집인 것이다. 그 언어들은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고 용광로보다 뜨겁고 때론 북극 빙하보다 더 차가운 언어들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전에 어떤 시인이 자신의 시집을 내게 주면서 “냄비 받침으로나 쓰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겸손히 자신을 낮춰 하는 이야기였다. 받는 나도 그것을 냄비 받침으로 쓸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조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아니면 라면 냄비 정도야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뜨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까?

지인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는 시집이 마우스 받침으로 쓰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시집 제목이 뭐냐고 물으니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라고 했다. 나는 시집 대신 사용할 마우스패드를 건네며 그 시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마우스 받침으로만 쓴 것이 아닌 듯 우글쭈글 화상을 입은 표지를 넘기니 표제시가 나왔다.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이재무,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중에서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에서 아, 그렇구나 끄덕이다가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에서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주로 깨달음과 감동과 신선함에 있다면 이 시는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생각하며 한때 마우스받침이었던 시집을 아껴서 읽었다.
그 사무실에 근무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마우스를 받치고 있는 종이뭉치가 아니라 한 권의 살아 있는 정서로서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경험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며칠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원에 위치한 벌터 경로당 어르신들이 시집을 내는데 그 표사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표사는 책의 뒤표지에 추천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 시집 발간의 내력과 취지를 듣고는 흔쾌히 쓰겠다고 대답했다.

고무줄이 땅에 살짝 내려올 때, 얼른 뛰었지
그렇게 고무줄 넘듯이 시간을 넘어왔어
오늘 따라 과거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네

-정순자, 「옛날」 중에서

입말의 정겨움과 삶의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어르신들의 시를 읽으며 무심코 넘어간 시집 제목을 다시 보니 『인생이 다 시지, 뭐』란다. 이 제목도 어르신들과의 대화 중에서 나온 말씀을 잡아챈 것이라 한다. 온몸으로 살아낸 시간의 흔적들, 그렇게 나이 든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시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인생이 시라면, 어르신 한 분 한 분은 각자 시집인 셈이다. 어떤 시집은 두껍고 어떤 시집은 슬픔으로 출렁인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아직은 미완성인 시집, 여전히 집필 중인 시집.
올여름 읽어야 할 시집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시집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는가.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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