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26> 재치와 해학 ‘양주별산대놀이’
[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26> 재치와 해학 ‘양주별산대놀이’
  • 김규태 기자 kkt@kyeonggi.com
  • 송고시간 2018. 08. 23 20 : 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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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사위·대사 통해 녹여낸 비판의식·풍자정신

탈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우스꽝스러운 탈을 쓴 광대의 익살스런 춤사위와 재담은 관객들과 호흡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탈춤은 한국인의 흥과 신명을 한껏 드러내는 민중연희이다. 한국인의 신명과 활달한 몸짓, 익살과 풍자가 절묘하게 어울린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는 1964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다. 이밖에 경기도에는 송파산대놀이와 퇴계원산대놀이도 있다. 산대놀이의 춤사위는 부드럽고 우아하며 섬세한 경기도 무용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봉산탈춤,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 통영오광대 같은 탈춤과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를까. 양주별산대놀이는 본산대놀이가 사회풍자와 비판의식의 표현보다는 세련된 놀이기술에 치우쳤던 전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핏 춤자랑, 말자랑 같은 장면에도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는 주장이 감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재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보면 “연극에는 산희(山), 야희(野) 두 부류가 있는데 나례도감에 속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유득공은 산대희를 다락을 엮고, 사자와 호랑이 따위를 만들어 놓고 춤을 추는 놀이라고 했으며, 탈춤인 야희는 당녀, 소매로 분장하고 춤을 추는 놀이라고 했다. 당녀와 소매는 양주별산대에 등장하는 왜장녀와 소무의 전신이 아닐까 싶다.

▲ 양주별산대놀이의 공연 모습.  양주시 제공
▲ 양주별산대놀이의 공연 모습. 양주시 제공

■ 왜 양주일까
양주별산대놀이는 양주시 유양동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유양리는 양주목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임진왜란 후 양주에 목사 유척기가 부임해 군사와 관내 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한양의 본산대를 초청한 것이 산대놀이의 시초라고 전한다. 200년 전부터 양주에서는 매년 초파일, 단오, 추석 같은 명절이면 사직골의 딱딱이패를 초청해 산대놀이를 공연했다. 그러나 딱딱이패가 공연이 많아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기자 을축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돼 딱딱이패에게 놀이와 가면 만드는 법을 배워 스스로 놀이를 하게 된 뒤로 이 놀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더욱이 그때 양주에 있던 악사청의 악사들과 어울려 연습을 한 끝에 본래의 산대놀이에 못지않은 재주를 익히게 됐으나 내용과 형식이 본(本)산대놀이와 조금 달라 별(別)산대놀이로 불리게 됐다.


양주에서 별산대를 만들어 본산대를 초청할 필요가 없게 된 시기를 18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1791년에 정조의 지원을 받은 번암 채제공이 특권 상인인 금난전권을 철폐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산대놀이는 한양 근교의 신흥 상업도시 양주의 사상도고가 육성한 탈춤이다.


이후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크게 놀았다. 특히 초파일에는 놀이판을 벌이기 전에 먼저 줄불놀이와 관등놀이를 했다. 이 놀이가 끝나면 마을 북쪽의 불곡산 아래에 있는 사직골에서 별산대놀이를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했다.


이렇게 전승되던 산대놀이는 6.25전쟁으로 탈과 옷, 도구가 모두 불에 타 버리고 놀이를 아는 사람들도 흩어져 그 맥이 끊길 뻔했다. 다행히 양주 출신인 김성대와 몇몇 사람이 정성을 쏟아 원형을 복원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보존에 힘써 오늘까지 이어지게 됐다.


▲ 양주별산대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 양주시 제공
▲ 양주별산대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 양주시 제공


■ 양주별산대놀이의 특징
양주별산대놀이는 일반 탈춤과 만찬가지로 악기 연주에 춤이 주가 되고 노래가 따르는 부분과 몸짓과 재담이 따르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상좌, 연잎, 눈끔적이, 왜장녀,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역은 대사가 없고 춤과 몸짓과 동작만으로 연기를 하지만 그 밖의 역들은 대사와 함께 춤과 몸짓과 동작으로 연기한다. 옴중과 취발이의 대사는 관중의 흥미를 가장 끌었다. 그러나 취발이의 대사는 너무 노골적이라 취발이가 등장할 무렵이면 부녀자 관객은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말없는 탈의 연기로는 노장이 가장 우수한데 대사 한마디 없이 춤과 몸짓만으로 소무와의 파계 과정과 희롱을 표현하고 있다.


공연은 보통 저녁에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다. 그때그때의 흥과 형편에 따라 3, 4시간으로 줄이기도 했다. 산대놀이의 대사와 춤이 구전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줄이고 늘이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산대놀이의 반주 악기로는 삼현육각 즉, 피리 두 개, 젓대(대금) 하나, 해금 하나, 장구 하나, 북 하나로 구성된다. 하지만 꽹과리를 추가하는 수도 있고 때로는 피리와 장구만으로도 춤을 춘다.


<증보문헌비고> 권 64에 인조 원년(1623)에 궁중가례에 가면을 쓰면 비용이 많이 드니 목가면으로 바꾸어 매년 개작해 쓰기로 논의된 사실이 있다. 양주산대탈은 오래전부터 바가지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탈은 놀이가 끝난 후 사직골 당집에 보관하고 해마다 개작해 썼고 당집이 없어진 뒤로는 연희자의 집에 보관해 왔다고 한다.



■ 파계승과 몰락한 양반
놀이는 길놀이로 시작되는데 서낭대와 탈들을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돈다. 낮 동안은 주로 부유한 집들을 들러 춤과 덕담을 베풀어 흥취를 돋우다가 밤에 탈고사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놀이 전의 고사에는 푸짐한 제물이 올라야 하고 제주를 음복해 취기가 오르면 놀이가 시작된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산대도감 계통과 같은 내용으로 파계승, 몰락한 양반, 무당, 사당, 하인 및 늙은이와 젊은이가 등장해 현실을 폭로하고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 등을 보여준다. 주제는 크게 나누어 파계승 놀이와 양반 놀이와 서민 생활상을 보여주는 놀이이다. 이처럼 양주별산대놀이는 당시의 특권 계급과 기존 도덕에 대한 비판정신을 연출하는 민중극이다.


그러나 각 놀이마다 주제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남녀 삼각관계의 설정에서 봉산탈춤, 오광대, 꼭두각시놀음은 남녀의 갈등을 강조해 영감과 미얄 그리고 그 첩과의 관계를 다룬데 비해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남녀의 갈등보다 양반과 평민의 대립관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모두 8과장 8경으로 돼 있으며 22명 내외의 출연진으로 연회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소무 2명, 가먹중 5명, 소무 4명, 원먹중, 완보, 옴중, 말뚝이, 연잎, 눈끔적이, 왜장녀, 애사당, 노장, 신장수, 원숭이, 취발이, 해산모, 샌님, 포도부장, 쇠뜩이, 도련님, 서방님, 신할애비, 미얄할미, 도끼, 도끼누이, 아들, 손자, 증손자다.


그리고 양주별산대놀이의 탈에는 말을 하는 유언탈과 말을 하지 않는 무언탈(멍추탈)로 나뉘어져 있다. 유언탈은 원먹중, 가먹중, 옴중, 신주부, 완보, 말뚝이, 신장수, 취발이, 조련님, 샌님, 쇠뚝이, 신할애미, 도끼누이, 도끼아들이 있다. 무언탈(멍추탈)은 첫째상좌, 둘째상좌, 눈끔적이, 왜장녀, 애사당, 손자, 증손자, 원소무, 가소무, 원숭이, 노장, 해산모, 서방님, 포도부장, 미얄할미가 있다.



■ 춤사위와 장단에 풍자정신 담아
산대춤에는 거드름춤과 깨끼춤, 두 종류로 돼 있다. 거드름춤은 염불곡으로 추는 춤이고 깨끼춤은 타령조로 추는 춤이다. 거드름춤이란 멋을 마디 속에 집어넣은 춤이고, 깨끼춤이란 그 멋을 풀어내는 것이다.


양주별산대에서도 춤과 음악, 노래, 덕담, 가사가 주가 된다. 반주되는 악곡으로는 영산회상, 염불곡, 느린 굿거리, 자진 굿거리, 느린 허튼타령, 중 허튼타령, 자진 허튼타령이 있다. 장단으로는 염불, 허튼타령, 느린 굿거리, 자진 굿거리, 세마치, 7채 맞음 등이 있다. 노래로는 등장가, 백구타령, 조기잡이, 야할타령, 염불타령, 둥둥타령, 넋타령, 시조 등이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통을 잇는 예인들의 긍지와 자부심도 유난히 강하다. 이러한 양주별산대놀이의 내용과 형식을 살펴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산대놀이의 춤사위와 대사에 묻어있는 비판의식과 풍자정신이다.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민과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민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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