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을을 보내면서…
<기고>가을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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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시인)

가을은 사랑이 목마른 계절이다. 어느덧 가을이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아니 늦가을 비가 한차례 지나간 후엔 벌써 겨울이 시작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어깨가 움츠러들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광교산에 들렀더니 단풍의 어우러진 모습들이 제법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어쩌다 호들갑을 떠는 검은 날다람쥐 녀석이 기분을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형제봉에서 바라본 세상은 더없이 풍요롭고 넉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 가을은 꼭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지난 월드컵의 열기와 환희가 엄청난 수해로 잠겨버리고 수마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채 맞이한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산을 벗어나면서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사실 말이 가을이지 가평 유명산에 들어 갈대 숲과 계곡의 맑은 물과 단풍으로 곱게 단장한 숲을 만난 것 밖에는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변변히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린이와 노인 어르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치르면서 우리네 삶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되돌아보는 참으로 소중한 계절이었다는 고마운 마음 또한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가을은 사랑이 목마른 계절이다. 수채화로도 결코 흉내낼 수 없이 고운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산이나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르른 하늘과 맑은 물소리 이 모든 것들이 웬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을 허전하게 한다. 가끔은 넉넉한 들판이나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마저도 외로움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드리우게 한다.

하지만 더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이 더없이 아쉽게만 느껴지던 어느 주말 늦은 밤에 본 영화 한편을 통해 계절의 대미를 깔끔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7살 지능을 가진 아버지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 엠 샘(I am Sam)’은 사랑에 목마른 가슴을 적시는 특별함이 있었다.

지적 장애인인 샘은 커피숍에서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어린 딸 루시를 위해 눈물겨운 사랑과 정성을 쏟는다. 루시 역시 아빠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더 이상의 지식을 쌓으려고 하지 않는 몸짓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러나 법원의 샘의 지능을 문제삼아 루시를 정부기관 보호를 받도록 한다. 졸지에 딸과 함께 살 수 없게 된 샘은 딸을 양육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능력있는 변호사와 함께 법정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샘의 애틋한 사랑이 딸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암시에 이르러서야 가라앉았던 마음이 사랑의 소중함으로 채워지게 된다. 사랑의 능력은 결코 지능으로 저울질 할 수 없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전해주는 아이 엠 샘은 모처럼의 감동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을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바라보이는 세상 모든 것들이 풍요롭고 마음마저 넉넉하고 훈훈해지는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에 아들·딸에 대한 사랑이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곱씹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우리 인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크고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다섯가지 화두가 신(神)·지식·인간·국가·사랑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정신문화의 연결고리라는 것이 정설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가을을 떠나보내는 지금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는 몸짓이 정말로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을 찾는 몸짓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 이순간에 있어 꿈과 희망이 가득한 사랑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불변의 명제이자 아쉬움 속에 가을을 떠나 보내는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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