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18세기 최고의 황금빛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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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의 초상화
▲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의 초상화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와 불같은 사랑을 한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인으로 프랑스 루이 15세의 ‘왕의 여인‘ 마담 퐁파투르 후작을 소개한다.

퐁파두르의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Jeanne-Antoinette Poisson)’이며 파리의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 문학 등 개인교습을 받아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였다. 1845년 왕은 외모와 교양을 겸비한 그녀에게 정식으로 퐁파투르 후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게 되며 이에 루이 15세의 정식 공인된 정부로서 24세에 베르사이유 궁에 입상하게 된다.

베르사이유 궁에 들어온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은 20년 동안 프랑스안의 모든 권세를 누렸으며 라이벌 격인 왕비 마리아를 정성껏 모시고 비위를 맞추어 왕비의 신임도 얻었다. 마침내 루이 15세는 국정을 그녀에게 맡기기 시작하며 15년간 실제로 프랑스를 통치했던 왕의 가장 힘이 있는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왕의 깊은 관심을 받을 만큼 그녀는 정치적 안목과 교양을 겸비한 세기 최고의 여성으로 손꼽힌다.

정치, 외교적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녀는 미술, 음악,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화려하면서도 지적인 외모와 함께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1750년 프랑수와 부쉐(Francois Boucher)는 그의 후원자인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의 초상화 를 그리기 시작하며 그의 열거되어진 초상화에 의해 18세기 프랑스 문화의 기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과업은 귀부인들의 화려함과 표현적인 미적 욕심보단 인문학적인 전파에 더욱 관심을 쏟았으며 보수적인 정치가나 신학자들에 의해 백과사전의 사용이 금지 되었을 당시 그녀의 적극 지지로 프랑스 백과사전의 판매가 다시 허용되게 되는 인문, 문학적인 공세를 쳤다. 그 뿐 아니라 예술학적으로 그 당시 베르사이유 궁 안에 ‘왕립 세브레 도자기 제작소’를 만들어 프랑스의 도자기 역사가 시작되도록 하여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를 꽃피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그녀는 평생 왕의 정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프랑스 정치, 외교적 통치자였으며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냄으로서 역사적으로 프랑스 최고 황금빛 시대의 예술을 지켜나간 진취적인 여인, 세기의 힘있는 여성임에 분명하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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