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단상] 생각하는 놀이터, 숨 쉬는 아이들
[시정단상] 생각하는 놀이터, 숨 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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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살던 여수 봉두마을 고향집 바로 뒤편에 갑의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피 묻은 갑옷을 갈아입었다는 곳이다. 뒷산 밭에는 대나무가 울창했다. 나는 어린 이순신이 돼 대나무 검을 들고 갑의산을 호령했다.

굳이 내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뒷밭에서, 개울에서 혹은 구부러진 산길을 따라 나름의 놀이를 창조하고 향유했을 어린 시절의 기억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이다. 아이들은 학업과 입시경쟁 속에서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 더욱이 각 아파트 단지에 멋들어지게 조성돼 있는 놀이터는 정제된 놀이시설들로 채워졌다. 위생상 이유로 모래사장조차 찾아볼 수 없다. 실내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은 말끔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제공하는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놀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됐다. 일본은 지난 1979년 하네기 공원에 일본 최초의 모험놀이터 ‘플레이파크’를 만들었다. 하네기 플레이 파크에는 취사 장소와 목재창고, 물 펌프 등이 있어 아이들이 물과 불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자연환경 속에 뛰놀면서 흥미를 느끼는 것을 찾고 누릴 수 있게 한다. 관리 인력과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며 아이들의 안전도 책임진다.

일본 모험놀이터가 표방하는 놀이의 가치는 아이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모험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를 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자연환경을 재현하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게 한다. 아이들은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고 모닥불을 지펴본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사다리를 만들어 나무에 올라가 보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경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스스로 안전해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그것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안전할 수 있는 법을 깨닫는 일본 모험놀이터의 역설이다.

시흥시는 이에 착안해 제1호 공공형 실내외 놀이공간인 ‘숨 쉬는 놀이터’를 만들었다. 숨쉬는 놀이터는 일본 모험놀이터의 놀이 정신에 공감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보고 적절한 위험을 극복하며 놀이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은 세계적인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가 맡았다. 프로그램 위주보다는 아이들이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도록 영역을 설정했다.

숨 쉬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뿐 아니라 부모들의 상설 교육, 학습, 공동체 활동, 자조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지원하는 ‘놀이지원센터’의 역할도 수행한다. 아이가 마음껏 노는 환경은 놀이에 대한 부모의 인식 전환이 반드시 수반돼야 조성될 수 있다. 숨 쉬는 놀이터는 교육과 놀이공동체 육성을 위한 지원 기관이자 지역 놀이문화 확산을 위한 거점 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는 아이들의 ‘놀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고 놀면서 사고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질서를 배우고 팀으로 화합하고 인내하는 법, 적절한 위험을 극복하는 자세를 배운다. 놀이는 아이들의 본능이자 권리다.

숨쉬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진정한 놀권리를 되찾아 주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이다. 더 안전하고 더 정제된 곳으로 아이들을 가두던 어른들의 반성이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숨 쉬는 놀이터 디자이너인 벨치히는 “좋은 놀이터는 어느 정도 위험을 허용해야 한다. 통제와 인식이 가능한, 조정할 수 있는 위험을 제공해야 한다”며 “아이들은 이 놀이터에서 자신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숨 쉬는 놀이터에서 놀이는 배우는 것이 아닌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이 된다. 아이들은 놀이의 객체에서 주체로 자리를 다시 옮겼다. 아이들이 만드는 놀이는 오는 20일 시작된다.

임병택 시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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