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부평 조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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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의 지형은 해안과 가까이 접해 있으면서도 계양산에서 시작하여 철마산과 만월산을 지나 부천의 원미산까지 반원형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해안가와 분리시킨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은 해안으로 접근하는 외부 세력에 의해 어느 정도 보호될 수 있는 지정학적 조건에 속할 수 있다. 또한 경인철도가 부평을 지나면서 철도가 서울로 이어지는 것도 교통의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반영되어 일제가 부평지역에 군사무기들을 생산하는 조병창을 건설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09년 일제에 의해 전국적인 토지조사사업 이전에 부평에서 최초로 시험 조사를 했는데, 이로 인해 부평지역에 토지구획정리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조건들이 조병창을 건설하기 위한 도시계획을 수립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처럼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을 노골화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던 부평 조병창의 이야기는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강제 징용당한 노동자들의 일부일지언정 태업을 통해 일제의 전쟁능력을 약화시키거나 무기를 빼내 독립운동이 사용하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있으나 제대로 된 발굴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에서 소외당했던 조병창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이야기를 뮤지컬화해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의 컨텐츠 공모에 선정되었던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 조병창은 이 땅에 살아가던 민초들의 이야기다.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에 나올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강제노역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 속에서 삶을 추구하던 민초들의 이야기다.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는 많은 자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가정의 놋그릇과 사찰의 종마저도 강제적으로 징발하게 되었다.

또한 노동력이 부족하자 청소년들까지 강제성을 띠고 조병창의 노동자로 끌어들였다. 독립운동은 양반출신들만의 활동이 아니라 훨씬 많은 민초들의 활동이 토대가 되었으나 정작 민초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그려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 아토에서 만들어 낸 뮤지컬 조병창은 더욱 새롭다.

그동안 인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개항장 위주로 이야기했다. 마치 개항장 시기의 스토리가 아니면 인천의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 듯 거의 모든 포커스가 개항장 위주로 맞춰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 아토가 만들어 낸 뮤지컬 조병창의 스토리는 부평을 품어낸 인천의 역사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러나 아쉬움은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많은 예산을 요구한다. 다양한 무대와 많은 배우, 창작해야 하는 노래들을 고려하면 많은 예산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의 역사를 담아 낸 소재의 작품을 공연예술 작품으로 내놓으려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작품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 예산의 지원이 적당하게 지원된다면 제대로 된 작품의 완성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조병창과 같은 작품들에 대한 예산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인천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작품 중 하나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굳이 개항장뿐만 아니라 조병창처럼 인천의 다양한 스토리를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낸다면 인천의 문화예술을 좀 더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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