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대마도 정벌 600년
[변평섭 칼럼] 대마도 정벌 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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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이라기 보다는 왜(倭)로 통하던 고려 말부터 해적과 같은 ‘왜구’는 매우 성가신 존재였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나 고려 말 충신 최영장군의 전설적 무용담도 부여 홍산 전투 등 왜구를 격퇴시킨 것이 많은 걸 보면 얼마나 그 피해가 막대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고려 수도 개성이 위협받을 때도 있었고 남해안, 서해안 주민들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살았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래서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화약을 사용한 대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 시대로서는 신무기였다.

그러고 나서 조선조에 들어와 왜구는 한동안 잠잠한 듯 했으나 세종 때에 이르러 다시 우리 해안을 드나들며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심지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해상을 통해 한양으로 운송하던 조운선(漕運船)을 약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세종 임금은 1419년 5월 왜구의 소굴이던 대마도를 정벌하기로 하고 그해 6월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하고, 227척의 병선과 1만 여 명의 군사로 하여금 대마도 정벌에 나서게 했다. 계획에서 출병까지 불과 1개월 만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매우 긴박한 가운데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 같다. 이것이 고려시대 몽골의 강요로 일본침공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일본을 군사적 공격에 나선 최초의 사건이다.

우리도 일본을 칠 수 있는 나라임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꼭 올해로 600년 전의 일이다. 이때 우리 군은 왜구가 갖고 있던 배 129척을 불태웠고 100척을 포획했으며 114명의 왜구를 붙잡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억류해 있던 우리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통쾌한 정벌이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고 나라를 잃기까지 했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레이더 갈등’이 새해 들어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우리 해군이 동해 중간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함정 레이더 가동이 우리 함정 가까이 접근한 일본 초계기를 공격용 레이더로 위협했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고, 우리 해군은 조난 선박 수색을 위해 매뉴얼대로 했을 뿐 공격용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일본이 초계기 영상을 공개한 것.

일본 언론은 이것이 방위성 반대에도 아베신조 총리의 일방적 지시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 아베총리는 왜 이렇게 강경노선을 택했을까?

물론 우리가 위안부재단을 해산한 것이라든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판결’ 등에 대한 일본 측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한국도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임을 일본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적인 인식’은 한국이 북한과 급속히 가까워지는가 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에 가까워지는 상황이 되면 더욱 복잡하고 민감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베총리로서는 이런 것을 은연중에 표출함으로써 일본의 헌법 개정 추진에 활력을 얻고 방위비 증액에도 상승효과를 노린다는 것.

‘한국까지도 일본과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아베총리가 노리는 계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 우리가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핵무장된 북한을 머리에 얹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좌·우에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도 군사대국이 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600년 전 우리가 대마도를 기습 공격하던 시대와는 지금의 동북아정세가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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