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서 ‘왕희지 난정기’ 재현 조선 유생 석판 명단 첫 발견
파주서 ‘왕희지 난정기’ 재현 조선 유생 석판 명단 첫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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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향토문화연구소, 민통선 백학산 중턱서 10여개 확인
1853년 3월3일 의미 ‘계축모춘’ 새겨져… 21일 현장 방문
파주민통선에서 발견된 왕희지 난정기를 재현한 선비모임석판. 파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제공
파주민통선에서 발견된 왕희지 난정기를 재현한 선비모임석판. 류병기 전 자운서원 원장 제공

중국서성으로 불리워지는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를 1500년 만에 재현한 조선시대 유생들의 행적이 새겨진 석판이 파주 민통선에서 확인됐다. 곡수유상(曲水流觴ㆍ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는 놀이)을 한 선비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연명으로 석판에 새긴 것으로 전국에서는 이번에 처음 발견됐다.

파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소장 차문성)는 민통선인 장단면 백학산 중턱에서 1853년 3월 3일 경상북도 등 전국에서 찾아온 유생 50여 명이 늦은 봄에 곡수유상한 것을 연명으로 구유암 등 3개 장소 석판 10여 개에 새긴 것을 발견, 현재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류명삼 치마대 대표의 제보와 안내로 이뤄졌다.

1853년 3월 3일은 왕희지체로 이름 높은 왕희지(303~361년)가 영화(永和) 9년(353년) 계축(癸丑)년 신록이 퍼지는 봄날인 3월3일 난정에서의 기쁜 모임을 기록한 ‘난정기’를 기록한 지 1500년 뒤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이날을 중요하게 여긴다.

전국에서 참여한 유생들은 백학산에 모여 봄 놀이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아양대’, ‘구유암’,‘영화대’ 등 3개의 장소 10개의 석판에 나눠 새겼다. 이름을 남긴 유생들은 현재 확인된 것 만 5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석판중 구유암에는 계축모춘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1853년 늦은 봄 즉 3월 3일을 의미한다. 

향토문화연구소측은 “전국에서 대규모로 선비들이 백학산을 찾은 것은 고려때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백이정의 제자인 익재 이제현이 자신의 저서에서 개성팔경을 언급했는데(1850년 경기읍지) 이 중 3곳이 파주 장단면에 있다”며 “그 중 한 곳이 백학산이어서 선비들이 왕희지의 난정기 재현을 이제현의 개성팔경 중 한곳에서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향토문화연구소는 오는 21일 정밀 조사에 나선다.

금석문 전공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도 “기록을 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석판이 확인된 장소 중 한곳인 영화대는 왕희지의 난정기에 나오는 영화(永和) 9년 계축(癸丑) 늦은 봄에서 빌린 것 같다”며 “이런 기록을 앞뒤로 살펴볼때 아마도 조선 유생들이 왕희지의 난정기를 1500년 뒤 파주 백학산에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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