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뱀의 껍질을 벗기다
[함께하는 인천] 뱀의 껍질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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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의예과(예과) 2년을 수료하고 나면 이른바 ‘지옥’이라는 의학과(본과)에 진입해 의학의 모든 지식을 배운다. 기초과목을 시작할 때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단연 해부학 실습이다. 이외에도 6년 동안 다양한 실습을 많이 해야 했다. 개구리부터 토끼나 자라를 이용한 생리학실습, DNA를 추출하는 생화학실습이 기억나지만, 가장 잊지 못할 실습은 살아있는 뱀을 직접 잡아 껍질을 벗겨 애벌레를 확인했던 기생충학실습이다.

본과 2학년 1학기 때, ‘서울의 봄’을 겪을 때였다. 그날 종합실습실에는 조마다 큰 유리 수조가 두 개씩 있었고, 하나에는 맑은 물이 담겼지만, 다른 하나에는 꼭 장어같이 생긴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2인 1조로 뱀의 머리를 자르고는 껍질을 벗기는 일이 우리들의 몫이었다. 태어나서 살아 꿈틀거리는 뱀은 본 적도 없는데 손을 대야 한다니 겁에 질려 한없이 머뭇거리기만 하자 C교수님이 다가와서 손수 시범을 보여주셨다. 머리를 자르고는 목 부분에 수평으로 절개해 껍질과 몸통 사이에 틈을 냈다. 나에게 뱀 몸통을 쥐고 있으라고 하시고는 껍질을 잡아 벗기기 시작했다. 내가 잡고 있던 부분이 하도 미끈거려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뱀의 꼬리가 튀겨서 교수님의 얼굴에 닿았다. 죄송한 마음에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놓치지 않게 꼭 잡았다. 벗겨진 껍질 밑으로 드러난 뱀의 흰 살을 물이 들은 수조에 넣고 헹궜다. 그러자 껍질과 몸 사이에 살던 많은 유충이 허옇게 떠다니는 광경이 드러났다. 만손열두조충(Diphyllobothrium mansonoides)의 2차 유충인 스파르가눔(sparganum·고충)들이었다.

촌충이나 십이지장충 편충 등을 외우기도 바쁜데 개구리나 뱀을 날로 먹어야 감염되는 스파르가눔을 왜 직접 학생들에게 보여 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였다.

C교수님이 정년퇴임 후 가천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근무하시는 동안 뵐 기회가 있었다. 학생시절에 ‘뱀 잡던 날’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실습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해 주셨다.

“후일 대통령까지 지낸 공수여단장 밑에 특전사 상사가 있었어. 부인이 날마다 남대문시장에서 뱀을 사오면 그 상사는 부대원들이 훈련받는 산에 뱀을 풀어놓았지. 시범으로 한마리 날로 잡아서 껍질을 벗겨 먹고 부대원들도 따라하게 했지. 후일 언론에서 뱀에 기생충이 있다는 것을 듣고, 수도 없이 뱀을 날로 먹은 일이 불안해져서 검사를 신청했지. 전공인 내게 의뢰가 왔고, 엘라이자(ELISA·효소결합면역흡착검사)로 검사해보니 스파르가눔 양성으로 나와서 그는 나중에 보상받게 됐어. 학생들에게 뱀의 껍질과 몸통 사이에 사는 ‘라바’(larva·애벌레)를 보여주려고 그 실습을 만들었어.”

소화기를 통해 섭취된 스파르가눔이 피부에 가면 염증과 통증을 일으키고, 뇌로 가면 어지럼증, 간질 발작, 마비, 혼수상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유효한 약이 없어서 수술로 제거해야만 한다. 그 실습에서 뱀 껍질 밑에서 사는 ‘스파르가눔’을 확인한 우리 동기생들은 평생 뱀탕을 입에 대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의협신문에서 C교수님의 부고를 보았다. 요사이도 쓰이는 ‘다항원혈청진단법’이 바로 그 교수님의 업적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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