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당구 열풍
[변평섭 칼럼] 당구 열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를 휩쓸던 폴 뉴먼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1987년 탐 크루즈와 함께 출연한 ‘더 칼라 오프 머니’(The color of money)일 것이다.

삐딱하게 눌러 쓴 모자에 담배를 꼰아 물고, 당구대 모서리에서 큐를 겨누는 모습, 한 방에 전재산이 날라가는 숨막히는 긴장과 적ㆍ백색의 공이 부딪히는 음향, 그야 말로 ‘신의 한 수’를 보노라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많은 젊은이들을 당구장으로 끌어 들이는 붐을 이르켰다.

그런데 요즘 당구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는 보도다. 한때 사양사업으로 뒤로 밀려났던 당구장이 이제는 곳곳에서 신장개업을 하는가 하면 당구 전문 방송채널까지 생겨 날 정도.

스트레스 해소와 치매 예방에도 탁월하다는 건강정보도 넘쳐 나면서 노인종합복지관은 물론 직장에서도 동아리들이 생겨 나고 있고, 심지어 할머니들도 당구장 고객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저렴한 경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당구열풍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당구에 빠진 50대의 직장인 M씨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부인은 서울에 사는 딸네 집에서 애기를 봐주느라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딸네 부부 역시 맞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정은 해체상태가 되어 버렸고 집에 퇴근해야 혼자다 보니 자연히 당구장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옛날 본 영화 ‘더 칼라 오프 머니’의 주인공 폴 뉴먼의 흉내를 내면서 땅-땅- 당구공을 치다 보면 모든 걸 잊고 쉽게 시간을 보낸다고도 했다.

또 한 사람, 세종시에서 만난 공무원도 당구를 즐기게 된 동기가 ‘가족해체’를 꼽았다. 그는 직장인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러기 가족’.

금요일 밤차로 서울로 올라갔다가 월요일 새벽 버스에 시달리며 세종시로 복귀하는 그의 삶은 그야 말로 고달프다.

그러나 자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말 가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퇴근 후 청소년들처럼 TV나 스마트폰 거임에 몰두할 수도 없고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다가 결국 당구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다 보니 당구가 ‘가족 해체’의 고독을 이기는 데 아주 좋은 명약이더군요”하고 그는 웃었다.

또 어떤 사람은 당구 큐를 잡고 있으면 젊은 시절 자장면 내기, 생맥주 내기 등 친구들과 어둘리던 추억이 자기도 모르게 젖어 온다고 했다.

땀 흘려 정신없이 일하고 골목 당구장으로 달려가던 시절-그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없었는데 50, 60대가 되면서 내일이 불안해 지고 가족 해체마저 감내해야 하니 자꾸만 공허감 속에 빠져 든다는 것이다.

하긴 50, 60대만이 아니라 20~30대의 가족 해체 현상도 심각하다. 1인 가구 비중이 28.6%에 1인 가구 수가 561만8천이 넘는 통계를 보면 여기에 젊은 세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우리나라가 짊어진 위기의 하나가 ‘가족해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니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50, 60세대 역시 그들대로 미래에 대한 불안, 거기에 ‘가족해체’까지 겹치다 보니 당구장의 ‘땅-땅-’ 공 부딪히는 소리가 위안이 되어 주지 않을까. 특히 50, 60세대는 과거 열심히 일하던 추억까지 반추하게 될테고.

변평섭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연예 2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