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본질을 보는 눈
[삶과 종교] 본질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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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인간이 세상에 창조되면서부터 시작된 사고(思考)의 열매로 생겼을 것이다. 철학은 종교를 만들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만들어 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 속에 우리는 종교인이 되고 그 종교는 여러 물주기가 되어 다양한 신앙을 만들어 냈다. 그 신앙은 분명히 인간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시작되었을 것인데 인구의 증가 때문일까? 아니면 문명의 발달 때문일까? 오늘의 종교적인 믿음은 본질을 떠나 비 본질을 더욱 붙드는 여러 모양의 도그마(dogma)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내용은 진정한 믿음에 관함이었다. 진정한 믿음은 종교적인 모양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성도(聖徒)라 불리는 사람들의 존재적 모습이었다. 참 신앙의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여 자신을 바라보고 애통함을 갖는 것이며 그 애통함 속에서 주님의 위로를 통하여 평안을 얻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그것이 믿음의 출발이며 참 행복함이고 종교가 아닌 신앙을 갖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 신앙의 본질은 사랑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사랑은 곧 소금과 빛으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열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소금은 녹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자랑이나 화려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소리없이 녹아 지는 것이 소금이다. 빛은 자신을 태우는 힘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 빛이 우리를 비추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며 세상과 다르게 존재하는 삶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이라는 단어를 존재케 하는 것이다. 화려한 교회의 네온사인과 주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화려한 목회자들의 삶의 모습과 오른손이 행한 착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도들의 자기 자랑은 이미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잃어 버린 빛바랜 모습일 뿐이다.

개인국민소득 3만불이 넘었다고 외치는 이 나라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랑에 굶주리고 있고 인간성의 상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기다리는 목마름에 젖어 있다. 화려한 종교의 옷을 벗고 우리가 진실로 사람을 섬기며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 속에서 빛나는 참 보석이 바로 내 옆의 사람이었으며 주변의 사람들임을 보게 될 것이다. ‘Understand.’ 맞다.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상대를 참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Under’, 밑에 ‘stand’서서 그를 올려다볼 때 온전한 상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고 외쳤던 예수님 제자의 목소리에 우리가 다시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아름다운 우리의 한반도강산에 아름다운 꽃들이 세상을 밝게 비취는 4월의 문을 열면서 우리 함께 가슴을 들고 깊은 들숨의 여유와 날숨의 평안함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 본다면 이미 내 안에 행복과 참 기쁨이 가득 채워져 있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이 좋은 날에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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