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효자칼럼] 완치의 희망
[100세 시대 효자칼럼] 완치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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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용태 의료법인 효자병원 진료과장ㆍ신경과 전문의


[100세 시대 효자칼럼] 완치의 희망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하이얀 종이위에 곱게 써내려간/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 버렸네/뻥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들면/떠나버린 너에게/사랑노래를 보낸다” (어니언스의 ‘편지’ 가사 중에서)

위의 노래는 1973년 포크 듀오 어니언스의 히트곡 편지의 가사 입니다. 아주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 이지만 그 내용이 우리의 감성을 젖게 하지요. 지금 사회에서는 위의 가사에서 나오듯 고전적인 종이 편지는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전자 편지를 쓰거나 이것도 불편하여 SNS 를 이용한 단문을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지요. 하지만 전자기기가 개입되지 않은 종이 편지는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꼭 이야기 할 진심을 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을 전해 줌으로써 좀 더 가슴에 여운을 짙게 남기기도 하고 어려운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편지가 의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1996년 미국 아틀란타 올림픽 개회식, 마지막 성화 주자에 뜻밖의 사람이 올라옵니다. 어둔한 걸음과 심하게 떨리는 왼손, 그리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것처럼 성화 봉을 꼭 쥐고 있는 오른손, 바로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감동하였지요. 복싱, 유색 인종으로서의 차별, 정치적 스캔들, 그리고 말년의 파킨슨병 등 알리에게 따라 붙었던 수식어는 그의 인생 역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파킨슨병은 전 세계에서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병입니다. 아직까지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지요. 많은 임상가, 연구자, 제약회사 등이 이 병을 극복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떠오르는 치료법 중 하나는 수술적 요법입니다. 특히 유전자 치료와 연관된 수술적 요법은 초기에 이 치료법이 도입될 당시 많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였지요. 만약 어떤 유전자나, 줄기세포를 뇌에 이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뇌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한다면 이 병도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팽배하였지요. 상당한 환자들이 이 치료나 임상 연구에 참여하였고 초기 연구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이런 종류의 수술적 치료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일부 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는 19세기 대표적인 프랑스 신경과 의사입니다. 샤르코는 여러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파킨슨병을 체계적, 임상적으로 정리하고 근대적 약물 치료를 시도한 사람입니다. 비록 파킨슨병은 제임스 파킨슨에 의하여 발견되었지만 이를 신경과 질환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한 사람은 샤르코입니다. 샤르코는 파킨슨병 환자와 많은 편지를 교환하였는데 이 편지에서 환자가 무슨 약을 먹었는지, 어떤 증상의 변화가 있는지 서술하게 함으로써 당시에 어떤 약을 사용하였고 환자가 임상적 경과가 어떠하였는지를 상세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편지를 통하여 환자가 본인이 처방 받은 약, 증상을 가감 없이, 잊어버리지 않고 서술하게 함으로써 좀더 객관적인 치료와 의사-환자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파킨슨병 환자에서 도입된 수술적 치료는 처음에는 매우 성공적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벽에 부딪쳤지요. 왜 환자가 좋아 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술적 치료가 문제가 되었을까요.

새로운 치료 방법은 그 치료의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꼭 위약을 통한 이중맹검 연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지요. 위약은 연구대상자에게 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수술적 치료에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중맹검 연구를 위하여 실제 치료 받는 환자와 똑 같이 대조군(치료받지 않는) 환자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치료는 그 자체적으로 윤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위약과 달리 집도하는 외과의에 따라 똑 같은 수술이 시행되기 어렵다는 점도 연구에 참여한 외과의사들의 성향에도 맞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초기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수술적 치료에 대한 가짜수술(sham surgery)을 이용한 이중맹검 연구가 시행되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가짜 수술한 환자에서도 진짜 수술한 환자 정도, 심지어는 어떤 경우에는 더 좋아진 경우도 있었습니다(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거의 없었지요). 결론적으로는 필요 없는 수술(혹은 역설적으로 필요한 수술?)을 한 것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위약 효과로 우리 몸에 얼마나 많은 자가 치유기능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수술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경우에는 더 극적으로 나타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샤르코는 이런 효과를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샤르코는 환자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 항상 맨 마지막 맺음 말로 Faith Cure(완치 믿음)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킨슨병이든 치매이든 이런 치료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가 아주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특히 샤르코와 같은 대가가 보여주는 믿음에 대한 신뢰는 가짜 수술과 같이 극단적인 방법을 하지 않더라도 그 이상 효과를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 회진을 도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자고 있습니다. 저는 굳이 자고 있는 이 환자를 흔들어 깨웁니다. 이 할머니가 저를 보면서 말합니다. “일찍 오셨네요….” “ 저 회진 왔습니다. 나중에 안 왔다고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러면 할머니는 미소 짓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딱 24시간만 갑니다. 그 다음 날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얼굴을 보면 그 24시간 동안은 아프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무슨 일로 얼굴을 보지 않고 이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면 여기저기 아픈데도 많고 여러 행동장애도 보입니다. 저는 제 얼굴이 그렇게 유용한지 몰랐습니다. 할머니에게는 Faith Cure의 희망일 지도 모르지요. 물론 24시간 만 지속이 되지만 말입니다.

곽용태 의료법인 효자병원 진료과장ㆍ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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