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팸투어] ‘동백꽃 배지’ 가슴에 달고… ‘제주의 아픔’을 되새기다
[‘제주 4·3’ 유적지 팸투어] ‘동백꽃 배지’ 가슴에 달고… ‘제주의 아픔’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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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여개 자매·우호도시 언론인 71주년 기념 ‘희생자 추념식’ 참석
선흘 도틀굴·북촌 너븐숭이 등 방문 비극의 역사현장 체험하며 아픔 공유
지난 3일 제주도 4ㆍ3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서귀포시청 제공
지난 3일 제주도 4ㆍ3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서귀포시청 제공

제주 4ㆍ3 사건이 올해로 71주년을 맞았다. 제주 4ㆍ3은 국가의 무력탄압에 의해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3만여 명이 학살된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수십여년 간 망각과 침묵을 강요당하며 희생자들의 가슴 속에 가라앉았다. 1980년대 이후 사건을 밝히려는 이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가려져 왔던 제주의 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온전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직도 이름을 찾지 못한 ‘또 하나의 역사, 제주 4ㆍ3’을 재조명하는 팸투어를 통해 역사적 현장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봤다. 편집자주

제주 4ㆍ3 사건이 올해로 71주년을 맞은 가운데 안양시, 여수시 등 국내 10여 개 도시 언론인들이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 4ㆍ3 사건’을 이해하고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했다.

제주도 서귀포시는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4일간 ‘국내 자매도시 기자 대상 4ㆍ3 유적지 팸투어’를 실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팸투어는 제주 4ㆍ3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올바른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팸투어에는 안양시, 여수시, 순천시, 군산시, 이천시, 안성시, 태백시, 철원군, 고흥군, 용산구 등 서귀포시와 자매결연 및 우호협력도시 관계를 맺은 국내 10개 도시 언론인이 참여했다.

팸투어 참여 기자단은 우선 지난 3일 제주도 4ㆍ3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고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기리는 4ㆍ3 정신, 함께 그리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주관한 이날 추념식에는 이낙영 국무총리와 여야 5당 지도부, 원희룡 제주지사, 도올 김용옥, 배우 유아인 등을 비롯해 4ㆍ3 생존 희생자와 유족, 도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 총리는 이날 추념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4ㆍ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완성을 역사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4ㆍ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릴 것”이라며 “‘국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과 배ㆍ보상 등 입법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와 성심을 가지고 협의해 정부의 생각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제주도 4ㆍ3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서귀포시청 제공
지난 3일 제주도 4ㆍ3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서귀포시청 제공

추념식 종료 이후 기자단은 선흘 도틀굴과 북촌 너븐숭이, 정방폭포, 서복전시관 등 4ㆍ3 유적지를 방문해 역사를 학습했다.

특히 북촌 너븐숭이 4ㆍ3 기념관에서는 고완순 전 제주 4ㆍ3 희생자 유족회장(81ㆍ여)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팸투어 3일 차인 지난 4일에는 서귀포시가 주최하고 제주유채꽃축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37회 제주유채꽃축제’를 방문해 4ㆍ3 홍보부스를 순회하며 생존 희생자 및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양윤경 서귀포시장은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데 정치적 이용과 편협된 시각으로 4ㆍ3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돼서는 안된다”며 “이번 팸투어를 통해 전국 자매결연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자들이 제주 4ㆍ3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홍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 4ㆍ3특별법에서는 제주 4ㆍ3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까지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안양=박준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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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은…
제71주년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이 지난 3일 거행되면서 제주도가 품은 아픈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귀포시청과 ㈔제주 4ㆍ3 연구소 등에 따르면 제주 4ㆍ3은 미군정기에 발생해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사건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6ㆍ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8ㆍ15 광복 이후 제주도에서는 통일 정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이러한 목소리를 무력으로 제압했다.

이러한 가운데 1947년 열린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한 어린아이가 경찰이 올라탄 말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목격한 도민들은 경찰에 항의했고 경찰은 그대로 총을 발포해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의 이같은 조치에 분노한 도민들은 곧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미군정과 경찰은 수천 명의 주민들을 가두거나 고문했다.

주민탄압이 계속되자 이듬해 4월3일 도민들이 무장을 한 뒤 미군 즉시 철수와 단독 선거 반대 등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경찰과 군은 봉기한 주민들을 강하게 진압했고 이에 맞서 봉기 세력 일부는 한라산에 들어가 유격대 활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1948년 5월10일 시행된 총선거에서 제주도의 선거구 3곳 중 2곳의 투표자가 과반수에 못 미쳐 무효가 됐다.

군인과 경찰이 한라산의 유격대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주민이 억울하게 죽었고 산간 마을의 95%가 불에 탔다. 이후 제주 4ㆍ3은 유격대가 완전히 토벌되고 1954년 9월21일 한라산 입산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끝이 났다.

오화선 제주 4ㆍ3 연구소 실장은 “하루빨리 제주 4ㆍ3의 온전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제주 4ㆍ3의 아픈 역사가 전국민에게 ‘또 하나의 역사’로서 올바르게 인식되고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고완순씨

[인터뷰] 고완순 前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장
“제주의 비극, 아직도 잘 몰라… 이제라도 증언해 원혼 풀어주고파”

“아직도 제주 4ㆍ3 사건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고완순 전 제주 4ㆍ3 희생자 유족회장(81)은 8일 “북촌리 옴탕밭(옴팡팥)의 흙이 피에 절어 시커멓게 변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됐고 추웠지만 춥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며 “하루에 400명 이상 죽임을 당하는 마을이 세상에 어디 있나.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힘들다”며 당시 처형현장을 회상했다.

고 전 회장은 4ㆍ3 당시 가장 많은 도민들이 학살(400여 명)당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당시 나이 9세였다.

그는 “군의 총부리에 머리를 얻어맞은 3살 동생은 머리에 물이 차 숨졌고 미군 통역까지 맡았던 외삼촌은 권력의 무리한 공출을 비판하다 빨갱이로 내몰려 숨졌다”면서 “제주 4ㆍ3은 그렇게 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고 토로했다.

이어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이제야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증언을 많이 해서 죽은 사람 원혼이라도 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게는 광주 사태처럼 보상을 해주고 당시 사태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책임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준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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