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용인하되 기억하라
[세계는 지금] 용인하되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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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한 역사학자가 원광대 총장을 방문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도 아닌 원광대까지 찾아간 것으로 봐서는 필시 긴요한 일일 테다. 뜻밖이지만 그의 목적은 이 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을 없애려는 것이다. 역사학자의 협작으로 이렇게 역사의 편린은 기어이 불태워졌다. 소각된 유물은 일본 왕이 내려준 어마무시한 작위가 붉은 글씨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정이위 대훈위 후작 우봉이공지구’라고 적힌 널판자였다. 바로 친일매국의 대명사인 이완용의 묘에서 출토된 관 뚜껑이었다.

근대 사학계를 좌지우지했던 이병도 교수에 얽힌 어이없는 일화다. 이완용의 먼 친척으로 알려진 그가 이후에 뇌까린 ‘매국노의 목관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일은 부당하다’는 변명은 석연치 않다. 평소에 그가 역설하던 역사관이 객관적 사료에 기초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실증사학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료로 입증할 수 없는 역사는 인정할 수 없다던 사학자의 손에 역사 한편이 지워진 셈이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조선왕조실록에 두 종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선조, 현종, 경종은 두 개의 실록을 남겼다. 붕당 정치와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로, 정권이 바뀌면서 반대파 사람들이 이전에 작성한 실록 원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실록을 별도로 낸 것이다. 당색으로 얼룩진 편향된 기록을 고친다는 표면적 이유 뒤에는 원본을 고쳐 자신들의 치적과 가치를 실록에 남기려는 욕망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눈엣가시 같은 왜곡과 미심쩍은 오류를 비난할지언정 원본을 훼손하거나 없애지 않았다. 피아를 막론하고 기록자의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후대의 공정한 평가에 맡긴다는 조선 유학자의 건강한 기록정신을 엿볼 수 있다. 아파트 12층 높이에 달하는 총 2천77권의 방대한 분량 못지않게, 내키지 않는 족적과 견해마저 다음 세대에 오롯이 전하려 했던 올곧은 역사관이 조선왕조실록의 진가를 배가시켰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실패와 오점을 숨기거나 미봉책으로 모면하려고 들면 진정성을 되레 의심받고 발전의 기회를 잃게 된다.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 한계, 상처, 치부까지 용인함으로써 자신만의 특유한 가치를 한층 드높일 수 있다. 당대의 잘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진중한 성찰을 통해 고스란히 현재와 미래의 역량으로 적축되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운 오점은 오점대로, 훌륭한 업적은 업적대로 나름의 교훈과 지혜를 물려줌으로써 역량을 강화한다.

우리가 아는 소수의 성공 사례 외에는 모두 실패로 간주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나 실패를 싫어하고 숨기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에서 이를 다루는 대원칙은 ‘용인하되 기억하라’이다. 용인 없는 실패는 구성원의 행동과 사고를 위축시킨다. 실패를 범할까 두려워 목표를 낮추고 도전과 혁신을 회피하게 만든다. 용감한 시도, 기민한 실행보다 실속 없는 계획과 회의만 벌이게 된다. 무엇보다 실패는 무마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어야 한다. 책임자를 가려 추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 원인과 과정, 재발 방지책 등을 철저히 기록, 학습해야 실패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패를 용인하되 기억하는 목적은 학습을 통한 미래의 핵심역량 구축에 있다. 실패를 애초에 지우고 왜곡하는 행위는 미래를 망가뜨리는 패착이다. ‘실패’는 용서하더라도 ‘실패의 왜곡과 삭제’는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월호 관련 항적이나 CCTV를 조작한 공무원, 듣도 보도 못한 디가우징 방식으로 행적을 파기했다는 총리실과 대법원을 보면서 개탄스러울 뿐이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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