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칭송받지 못한 진정한 영웅들
[문화카페] 칭송받지 못한 진정한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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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된 잔디축구장에서 수십 대가 넘는 중계카메라의 초점이 되어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가 있다. 더불어, 명품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사이드라인에서 특유의 캐릭터를 마음껏 드러내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감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레모니도 선수들의 득점장면 이상으로 인상적이다. 반면, 카메라 한 대 없는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발목 보호를 위해 테이핑을 하거나 부상선수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땀 흘리는 재활 트레이너들이 있다.

예수를 따랐던 여인 중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가 있었다. 예수가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의 강론을 들으며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까이 있는 예수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듣고 싶지만,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향해 팔을 걷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를 희생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라이언 킹’을 관람했다. 무대의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양쪽의 작은 발코니에서 간헐적으로 북을 치는 두 명의 연주자들을 발견하고 과연 이들이 어떤 자세로 연주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기로 했다. 무대 위의 화려한 배우들에 비해 아무런 조명이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들의 연주는 한순간도 온몸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페라 극장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출연자들이 있다. 주역 및 조역가수들, 발레단, 그리고 합창단 등이 있다. 또한, 무대 위는 아니지만, pit-피트 (무대 앞에 위치하고 있는 큰 구덩이)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청중들의 시야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없다면 오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교향악단 연주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하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무대 뒤의 스태프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들은 연주자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 콘서트홀에 나타나 준비를 하고 연주를 마친 후에도 마무리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오케스트라에는 많은 악기가 다양한 기능으로 연주에 참여한다. 통상적으로 8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감동을 주는 연주’라는 목표를 지니고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역할은 현저하게 다르다. 바이올린은 연주 초입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쉬지 않고 꽉 채워진 악보의 많은 음표를 연주한다. 반면, 타악기 또는 금관악기 들은 연주하는 음표보다 쉼표가 더 많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악보는 검은색보다 흰색의 공간이 눈에 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타악기들은 앞의 3개 악장에서는 아무런 음표도 없고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연주한다.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서도 트롬본들은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만 연주하도록 작곡되었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바이올린은 한 음표당 백 원이면 타악기는 십만 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세계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 중 또렷이 기억나는 연주자가 있다. 한 시간 길이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단지 다섯 개 정도의 음표를 연주하는 독일의 심벌즈 연주자였다. 실제 소리를 내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동료들이 연주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어떤 연주자보다 무대에서 흐르는 음악을 깊이 느끼며 즐기는 것을 나를 비롯한 모든 청중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Unsung Hero 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뒷전에서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꺼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아가 그들의 스타 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 혹시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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