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진 칼럼] 밈의 진화 ‘UBD’
[이재진 칼럼] 밈의 진화 ‘U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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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은 문화적 유전현상, UBD는 17만을 나타내는 신조어>

지난 15일 개봉한 <악인전>은, 개봉 하루만인 16일 1 UBD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던 <어벤져스 4>를 누르고 1위로 등극했다. 여기서 1 UBD는 17만을 의미한다. UBD는 네티즌 사이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상의 새로운 단위이다.

이것은 <자전차왕 엄복동>의 관객수가 17만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관객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관객수가 17만명에 그치게 되자, 네티즌들은 ‘엄복동’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UBD라는 단위를 만들어냈고, 이는 17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UBD는 의외로 유용하게 사용되면서, 최근 인터넷에서는 핫한 관심어가 되었다. 우리나라 인구는 약 300 UBD(≒5천만17만)가 되고, 국회의원 숫자는 300명이어서, 1UBD의 인구를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셈이 된다. 17만을 UBD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인터넷 상에서 더 찾아보았다. 환율상 1천위안은 1UBD 원이고, 제천시의 2020년 인구 목표가 1UBD 명이며, 지난 4월 취업자 증가폭이 1UBD 명에 그쳤다.

지난 3월 초경 퇴직 후에도 직장 의료보험 가입자로 남아있는 사람의 숫자가 1UBD 명이었고, 얼마 전 BMW 리콜 대상 차량대수가 1UBD 대였으며, 암호화폐 대시는 5월16일 기준 1UBD 원 금액에 거래되었다.

물론 UBD 단위는 그 정확도나 필요성 면에 비추어 볼 때, 실무에서 실제 단위로 활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이를 빠르게 전수해가는 일종의 인터넷 밈 현상에 대한 진화가능성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원래 밈(meme)은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낸 신조어로서, 그의 걸작 <이기적 유전자>에서 소개된 용어이다. 여기서 밈(meme)은 복제(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로서, 생물학적인 유전 외에, 사상, 종교, 관습적인 것도 문화적으로 유전된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담아서 새롭게 표현된 개념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유전 현상인 ‘밈’은,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유행어, 짤 등이 유행하거나 회자되면, 네티즌 사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는 현상을 표현하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UBD 단위는 이러한 의미에서 일종의 밈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인터넷 밈은 주로 일상을 벗어나는 예외성의 재미 또는 특별한 이해를 통한 신선한 유머 등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현대인들에게 비정규적인 배설의 통로를 제공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UBD 단위는 혹하는 재미나 한 번 웃고 넘기는 유머 차원을 넘어서서, 밈의 새로운 정착지를 보여주는 듯하여, 매우 신선한 느낌이다.

17만이라는 개념은 단위로서는 무용한 숫자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발상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사용하는 단위 개념에서, 단위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개념은 의미로 발전하여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해 준다. 국민의 숫자가 UBD로 나누니 국회의원 숫자가 나온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나아가 밈이 이제 웃고 즐기는 유행의 개념을 넘어서, 실제 사용하고 활용되는 현실적인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고무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밈은 마치 초원을 떠돌면서 어느 곳에서도 그 정착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또 언제라도 또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유목민을 닮았다. 늘 신선한 감시의 끈을 놓치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현상 속에서 새로운 개념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밈의 발전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밈의 또다른 모습은 어떤 것일지 기다려진다.

이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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