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벽돌을 찍으며
[시 읽어주는 남자] 벽돌을 찍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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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語로 찍어낸… 고달픈 ‘삶의 여정’

벽돌을 찍으며

                      - 김명인

눈물을 닦으며 벽돌을 찍었다
빈틈없는 일과를 햇빛 아래 누이며
저것들이 잘 말라 단단해지는 동안
또한 설치며 지나가는 가을 한나절을
나는 외로운 협력, 내가 찍어내는 세상 속으로
5:3:2
모래와 흐린 저녁으로 뒤섞어주었다
동행하는 죄가
푸른 알몸으로 비벼 서는 하늘 저편까지
진종일 땀방울을 퍼 올리시고 하나님
몇 할의 어둠뿐으로 하루를 찍어내시는지요?
빈 공사장 구석마다 구덕살처럼 아픔이
캄캄하게 박히고 있다

《동두천》, 문학과지성사, 1979.

어떤 일은 즐겁고, 어떤 일은 힘겹다. 모든 게 즐거울 수는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알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게 우리의 욕망이다. 한번뿐인 삶의 여정을 마구 훼손하고 싶은 사람은 결코 없다. 잘 산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노력한 만큼 얻고, 얻은 만큼 즐기는 것이다. 어떤 일이 힘들다 해도 그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그 대가로 누리는 각자만의 즐거움 때문이다. 이 간단명료한 이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삐걱대고 우당탕거린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은 이제 울림이 없다. 인내도 쓰고 그 열매는 더더욱 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조리의 세계를 산다. 그 불편한 단정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본인의 노력이 부족한 거를 그렇게까지 비약하면 되느냐고. 여기에 우리들 삶의 복잡함이 얽혀있다. 그것은 동행(同行)의 어려움이고, 인간의 어려움이다.

김명인 시인의 시 <벽돌을 찍으며>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세계의 ‘어려움’을 고독하게, 아프게 말하고 있다. “눈물을 닦으며 벽돌을 찍었다”는 첫 행부터 “아픔이 캄캄하게 박히고 있다”는 마지막 행까지 고독과 슬픔이 벽돌처럼 층층이 쌓여있어 먹먹하다. 그 먹먹함이란 눈물 ‘흘리며’ 벽돌을 찍는 시간이 아니라 눈물을 ‘닦으며’ 벽돌을 찍는 시간에서 나온다. 닦는다는 의지는 살아봐야겠다는 숭고함의 개진(改進)일 것이다. ‘벽돌’을 찍어내는 노동의 반복은 지루하고 힘들다. 그것은 즐거움의 행위라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고통의 순간이고, 어떤 여유도 허락지 않는 ‘빈틈없는 일과’다. 화자가 찍어내는 ‘벽돌’은 화자를 세상 속에 강제로 편입시키는 족쇄일지도 모른다.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찍어내는 ‘벽돌’의 시간 속에서 화자는 ‘나는 외로운 협력’이라 말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노동, 그것이 ‘외로운 협력’이다. 인내도 쓰고, 열매도 쓴 혹독의 시간을 내팽개칠 수 없는 이유는 ‘타인’ 때문이다. 그들이 가족이든 혹은 민중이든 내가 지켜내야 하는 존재들이기에 힘들지만 ‘벽돌’을 찍어내야 한다. 그래서 삶은 ‘동행하는 죄’가 된다.

세상은 부조리다. 그러나 우리는 부조리를 살아내야 한다. 타인과 ‘동행하는 죄’로, 그들을 사랑하는 죄로 눈물 닦으며 벽돌을 찍어야 한다. 눈물과 사랑과 아픔의 비율이 잘 맞아 빚어진 단단한 벽돌들, 그것들이 튼튼한 집의 기반이 될 때까지 우리는 ‘동행’의 어려움을 살아야 한다. 김명인의 시를 읽으며 인간의 숭고함은 희생의 윤리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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