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하지(夏至)를 앞둔 단상
[문화카페] 하지(夏至)를 앞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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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하나
얼마 전 기차를 타고 남도를 다녀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노랗게 물든 황금빛 보리밭을 보았다. 한편에는 줄을 맞춰 모내기를 끝낸 초록빛 논도 있어 양쪽의 풍경을 번갈아 보며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양력으로 6월6일이 보리를 베기를 마치고 모내기를 하는 망종(芒種)이었고 7일은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인 단오(端午)로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농경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단오는 큰 명절로 여겨져 여러 가지 민속이 행해지고 있다. 단오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약으로 쓸 쑥과 익모초 뜯기, 절기음식인 수리취떡 만들기 등과 함께 그네타기, 활쏘기, 씨름 같은 민속놀이 등이 행해졌다.

남원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던 이팔청춘의 선남선녀인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한 것도 단오 즈음이고, 전국의 명궁들이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천하의 소리꾼들이 모여 판소리 실력을 겨루는 유서 깊은 전주대사습놀이가 열리는 시기도 바로 단오 때다. 또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에서는 풍요와 번영을 비는 단오 굿이 며칠간 펼쳐지며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긴다.

이처럼 봄 농사와 모내기를 전후해서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마을의 단합과 풍요, 풍어를 기원하였으니 바로 이어지는 하지(夏至) 무렵까지 보리타작, 모내기 마무리, 하지감자 캐기, 메밀 파종 등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농번기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농경사회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전해진다.

단상 둘
필자는 며칠 전 우연하게 경기도 고양시에서 토종볍씨로 키운 모를 심는 행사를 마친 시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기와지 볍씨가 발견된 고양지역에서 이제는 잊힌 사라져가는 우리의 토종볍씨를 논에 모내기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의미 있는 행사라 생각했다.

비록 토종볍씨의 쌀 생산량이 저조하고 상품화하기 어려우며 우리의 입맛에 맞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식물 다양성과 종자주권의 보호 그리고 전통에 담긴 의미를 오늘에 다시 되새기고자 추진한 행사라고 하기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올가을 추수를 하면 토종볍씨로 키운 쌀로 막걸리를 함께 빚어 한판 잔치를 만들어 보자고 하였다.

오늘날 도시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지나며 농경사회에서 중요시하던 절기와 민속의 많은 부분이 전승이 단절되고 있다. 또한,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기계농업의 보급 등 농촌의 환경도 많이 변화했다. 그러나 이른 더위와 함께 시작된 차창 밖의 여름날의 풍경은 단지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풍요로운 수확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려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을 흘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장마가 시작되거나 가뭄이 오고, 태풍이 불 때마다 근심을 하며 애태우는 농부의 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살아왔다.

하지를 앞두고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 하나하나에 담긴 농부들과 생산자들의 땀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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