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진 칼럼] 연대보증
[이재진 칼럼] 연대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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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래 전 선임했던 사건 가운데, 시골 할아버지의 연대보증 관련 사건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K가 이주해 왔다. K는 시골의 궂은일들을 도와주기도 하였고, 할아버지와 같은 토착민들에게도 매우 잘 대했다.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K를 신뢰하게 되었다. 한편 K는 조그맣게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할아버지에게 조금은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되었다. K의 이야기인즉, 자신의 개발사업 한 곳에 돈이 묶여있어서 그러하니, 사업을 하는데 할아버지가 연대보증 하나만 서달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K를 매우 신뢰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흔쾌히 보증을 서주었다. 그러나 대출채무의 만기가 되었는데도 K는 이를 변제하지 않았고, 급기야 할아버지에게 연대보증책임을 지게 하는 민사소송이 제기되었다. 원고는 금융기관이었고, 피고는 위 할아버지였다. 내가 맡은 것은 피고 소송대리였다.

법정에서 준비된 절차를 마치고 변론을 종결함에 앞서, 재판장에게 최후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실정법을 떠나서 연대보증의 문제점에 대해서 주장했다. 연대보증인은 한 푼의 돈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고, 이러한 연대보증인을 이용하여 대출금의 혜택을 누린 사람은 채무자인데, 그 모든 책임을 연대보증인에게 지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 채무자인 K가 타인의 이름을 빌려서 부동산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은 왜 강구되지 않는지도. 나아가 이 사건에서 할아버지는 시골 노인으로서 세상물정을 모른 채 연대보증책임만 지게 된 억울한 사정이 있음을 주장했다. 재판장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원고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그러나 원고는 금융기관이어서, 예외를 인정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것이었고, 법에 따라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판결은 패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할아버지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주장했던 대로, 원고는 K의 개발사업 건을 조사하였고, 개발현장의 재산을 찾아서 그곳에 집행하여 대출금을 회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할아버지를 상대로 해서는 사실상 판결의 집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대보증은 위 할아버지의 경우와 같이 책임만 존재하는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는 그간 은행 및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대보증 폐지를 확대해왔고, 올해 1월 1일부터는 대부업체의 연대보증도 폐지되었다. 아직도 개인간의 연대보증 약정은 가능하고, 법인대출시 대표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까지 법이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대출의 경우에는 이제 완전히 연대보증이 폐지된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종의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상상력과 총량의 증대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본과 기술, 투자와 기업이 분리될 수 있었던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총량의 증대는, 발전하리라는 미래의 전망에 기인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에 투자할 수 없고, 산업과 기술은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대보증은 이에 역행한다. 미래의 전망은, 투자 가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연대보증인의 재산적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대보증은 채무자의 무책임과 연대보증인의 추락으로 사회병폐적 악순환을 남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부를 얻게 되지만, 이것은 발전적 가치 창출에 기인한 수익이 아니다. 기업의 상상력이 투자를 유치하고, 이로써 전체 총량이 증대되는 결과를 냄으로써, 기업과, 투자자, 이용자 모두의 편익이 증대되는 이상적인 구조가 도래하길 꿈꾸면서, 부디 정부가 추진하는 연대보증 폐지의 노력이, 건강한 투자와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이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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